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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주 장원

  • 작성자 들꽃 향기
  • 작성일 2006-02-07
  • 조회수 2,728

 

 이번 주에도 80여편 가까운 시가 올라왔습니다. 이 게시판이 처음 시작할 때에 비해서 요즘의 시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함으로 폼을 잡는 글들은 많이 줄었습니다. 예전엔 청소년들의 시를 읽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 지를 알아먹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지요. 새로 알게 된 멋진 말들을 다 동원하여  그럴듯하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문학소년들이 꽤 있었거든요. 거기에 비하면 요즈음의 시들은 솔직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생활과 감정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알지도 못할 말로 독자들에게 거리감만 느끼게 하는 것에 비해 훨씬 성실한 필자의 자세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또 어떤 면에서 보면 소박함이 지나쳐 아무리 봐도 시가 되기 힘든 생활의 한 파편을 너무 보물 다루듯 매만져 시를 만들려고 애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어쩌면 독서력의 부족에도 원인이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전 시대의 학생들이 너무 고상한 척 하려 한 것이 문제였다면 요즘은 아예 고상한 것에 관심을 안 가지려는 것이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다는 말입니다.  자기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만 몰두하고 좀 더 근원적이고 원대한 세계에 대해 닫혀있는 것은 진정 배우는 자의 태도도 시인의 자세도 아닐 것입니다. 섬세하게 깨어있는 눈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발견하고, 우주와 세계의 본질을 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동서고금의 책을 부지런히 읽어 음미하고 사색하여 자기 글에 깊이를 더하기 바랍니다.

  이번 주는 기대만큼 눈에 뜨이는 작품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보헤미안랩소디의 <손금>은 매끄럽고 세련되긴 하나 메시지가 약하고 마파람의 <중년의 향기> 일상의 삶을 잘 포착해내는 섬세함이 있으나 좀 더 풍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막사발의 <두부 사세오> 돛새치의 <상온>도 흥미로운 글감이나 미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질량의 <콜라 한 병>은 참신한 표현은 돋보이나 과다한 의미부여를 작품이 감당해내긴 벅찬 것 같더군요.  오책의 <삼층석탑> ‘삼층석탑’이나 ‘돌조각’ 같은 사물의 비유와 상징이 잘 녹아들지 않은 면이 있었지만 유려한 호흡으로 어머니의 헌신적인 삶을 잘 그려내고 있어서 호감이 갔습니다. 오책은 시 게시판에 등장한지는 얼마 되지 않으나 깊고 진지한 세계 인식으로 시에서도 높은 성취를 이루지 않을까 기대하여 함께 주 장원 대상자로 뽑습니다. 권기웅의 <어머니의 설연휴> 짠 밀물처럼 들이닥치는 친척들을 접대하느라 지쳐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잘 그려냈더군요. 후반부 와서 어머니의 푸념조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좀 아쉬웠으나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작품을 써 온 필자에 대한 격려의 마음으로 제가 뽑는 마지막 주 장원으로 선정합니다.  

 

 이것으로 마지막 심사를 마쳤군요. (시원 섭섭^^) 약 반년 동안 글틴을 통하여 청소년 여러분들의 많은 시를 읽어왔는데, 학교 일 틈틈이 시를 읽고 평을 달고 우수작을 뽑고 하는 일이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교사들이 밖에서 보기보담 일이 많고 바쁘거든요.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아이들의 글을 읽다가, 곁에 있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소홀해지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어 시간적으로 좀 더 여유로운 분에게 이 일을 넘겨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이 사이트를 통하여, 비록 면식은 없지만 열정과 고민이 가득한 여러분들의 시를 읽은 것이 제게도 퍽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문학이 예전만큼 사랑받지 못하는 시대에 글 하나에 간절한 마음과 꿈을 담아내는 전국의 어린 문사들이 참 고맙게도 느껴졌습니다.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친절하게 시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얘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생각만으로 끝나고 말아서 아쉽군요. 어렵게 글을 쓰려는 여러분에게 따뜻한 격려보다는 흠을 잡아내는데만 치중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크고요.

 이제 공식적으론 게시판 관리자의 임무는 벗었지만 시간 날 때면 들어와서 여러분들이 발전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겠습니다. 부담 없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 얘기도 나누고 싶고요. 글틴을 통하여 열심히 읽고 써서 우리 문학을 빛내는 인재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새로 게시판을 맡게 될 문경화 선생님과 더욱 깊이 있고 정겨운 관계 만들어가길 빌게요. 안녕~


   ******************************




삼층석탑    / 오책



 현관이 열리고 푸르죽죽한 이끼의

 어두운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삼층의 석탑을 좁은 등에 짊어지고

 엄마가 앙금앙금 걸어 들어온다.

 얼었던 밤공기가 녹아 달아오른 안방으로

 기어오자 삼층석탑은 솜이불을 두른다.

 쭈그러든 엄마를 기다리는 것은

 뜨듯한 황토가루를 뒤집어쓴 매트가 아니라

 싱크대에 가득한 이끼 묻은 돌조각들이다.

 겨울에 절은 물에 손을 담고 이끼를 닦아내자

 허공에서 떨던 엄마의 손이 보이지 않는다.

 흐트러진 골반과 짓이겨진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엄마는 매트에 겨우 몸을 녹인다.

 꿈속에서도 엄마는 삼층석탑을 짊어지고

 흐트러진 바람으로 삼층석탑을 보듬는다.


 가난의 울음에도 삼층석탑은 나날이 커갔다.

 더욱 단단해지고, 갈수록 무거워졌다.

 십여 년간 삼층석탑을 어깨에 이고

 세상을 걷던 엄마의 허리가 소리를 쳤다.

 깊은 밤하늘 부서지는 노란 달빛처럼

 엄마의 허리뼈도 느릿느릿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한 번 주저앉았다가도

 금세 일어서지 못하고 빌빌 떨어댔다.

 어느 날부터 집안에 하얀 가루가 흩어 뿌려지기

 시작했고, 초라한 약봉다리가 늘어만 갔다.

 그 흔한 물리치료에 벌벌 겁을 먹으면서도

 삼층석탑을 닦기 위한 헝겊은

 가장 빛깔이 좋고 부드러운 비단을 썼다.

 삼층석탑은 엄마에겐 가장 귀한 보물이었다.

 그러나 가끔 삼층석탑이

 너무 무거워 정신을 아득히 떨어뜨릴라치면

 엄마는 자신의 가슴을 깨물며 약해지는

 몸뚱이를 원망하며 하늘에 울음을 던졌다.


 입춘(立春)을 울리는 겨울 새벽바람에 섞여

 하얀 가루를 흩뿌리며 오늘도 엄마는 세상을 걷는다.

 여전히 삼층석탑을 짊어지고, 힘겹게 걷는다.




  어머니의 설 연휴   / 귄기웅



밀물이 뻘을 덮어 버리듯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한 손엔 선물을 달고

또 다른 한 손엔 아이들 손잡고

바닷물처럼 짠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쭈글한 손을 허리에 얹은

시어머니는 새처럼 쪼아댄다

"애미야~" "애미야~!"

"맏며느리가 뭐 하느라 그리 굼떠~"

한해에 두 번의 연휴에

온몸이 삭아간다

바다 파도에 바위가 깎이듯

손끝은 무뎌지고

남편에 대한 애정은 닳아간다


"넌 이러지 마라"

열아홉 아들을 앞에 앉히고

어머니는 푸념을 시작하신다

올해의 시작도 어머니는

여자가 아닌 맏며느리로

시작하고 계셨다



들꽃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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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주 장원

  윽 -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가네요.오늘 중으론 올리겠다고 약속했는데,   50여편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설날이 끼어서 그런지 올라온 편수는 조금 줄었지만 수준있는 글들이 대부분이어서 좋았습니다. 아마도 글틴이 이제 제대로 무르익어 가나봅니다. 여러분들끼리 나누는 대화도 참 품위가 있으면서도 정겨워서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면(이런걸 눈팅이라고 하지요?) 절로 웃음이 나와요. 여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보이는 저질스런 댓글은 단 하나도 발견을 못했으니 글틴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겠지요? 사실 선생님들은 글틴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걱정이기도 하답니다. 웬만한 청소년들은 끼어들 엄두를 내기가 힘드니까요. 처음에 좀 썰렁해도 자꾸 들어오고 댓글도 달면서 전입신고도 하고 하다보면 금새 친한 친구가 되는 것 같더군요. 격의없이 들어와서 글도 올리고 대화도 나누고 하기 바랍니다.  좋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그렇게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거의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뜨이는 작품이 상사화 <아버지의 촉루> 돛새치 <자장국 설거지> 빵우 <병> <세월> <학생은 군인이다> 꺄르륵의 <연꽃밭 할매얼굴> 등입니다. 오책의 <쌀> chris의 <사랑의 스펙트럼>도 참신했고요. 비슷비슷한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한 작품을 고르기가 쉽지 않군요.  그중 오책과 chris의 작품은 새로운 시적 대상(쌀 같은 경우, 어른 시인들은 종종 다루는 소재이지만, 청소년들은 글감으로 쓰는 경우가 드물거든요)은 좋지만, 표현 혹은 주제의 면에서 조금 더 다듬거나 깊이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일단 미루어둡니다. 그리고 빵우는 <세월>이 특히 좋은데 상을 자주 받은 학생이니까 또 일단 보류를 합니다.  상사화 <아버지의 촉루> 좀 더 치밀하게 퇴고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발견과 연상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돛새치 <자장국 설거지>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고보니 가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군요. 민족의 명절 설 덕분인지..) 이 작품 역시 좀 더 깔끔히 다듬을 부분이 있고, 마지막에 시험성적 얘기 같은 것은 없는 것이 더 나았겠지만, 묵묵한 어머니의 헌신을 헤아리는 자식의 내면을 잘 드러낸 성찰이 돋보여서 호감이 갑니다. 처음 보는 필자인 꺄르륵의 <연꽃밭 할매얼굴>은 봄바람같은 시입니다. 어찌보면 뚜렷한 핵심이 없는 듯이도 느껴지지만 그 화안하고 살랑이는 분위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작품만 뽑고 다음으로 미룰까 하다가 이번 주는 인심을 팍팍 쓰기로 합니다. 설날도 끼었으니 세배돈 주는 셈치고 이상에서 언급한 세 작품을 모두 주장원으로 선정하겠습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드리고, 다른 모든 필자들도 쓰는 것과 읽는 것이 함께 행복하고 충

  • 들꽃 향기
  • 2006-02-01
1월 3주 장원

   이번 주에 눈에 띄는 필자들은 김재현, 막사발, 오르페우스, 보헤미안랩소디, 빨강머리 앤, 옥따비오빠스 등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오르페우스의 <갈대와 소> 빨강머리 앤의 <우렁이 마음으로> 그리고 막사발의 <어시장의 인어왕자>입니다. 감각적이 표현은 뛰어나나 강하게 남는 메시지가 부족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간결하고 소박한 이미지와 선명한 메시지가 좋았습니다. ‘갈대와 소’에서는 소가 갈대가 되고 갈대가 소가 되는 원형의 삶, 불이의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였고, ‘우렁이’는 작은 것을 허투루 보지 않는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이 좋았습니다. 주 장원으로는 오르페우스는 그동안 여러 번 수상을 했던 필자이니 제외를 하고, 빨강머리 앤은 처음 시를 올렸고 다른 작품들이 조금 취약한 면도 있어서 다음 기회를 더 보기로 합니다. 막사발은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선을 보이는 필자인데 지난 주보다 훨씬 정돈된 모습이 보입니다. <어시장의 인어왕자>는 시장바닥을 기어다니며 구걸을 하는 장애인을 다룬 글인데 가슴 아픈 소재를 담담하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담담함이 힘인 것도 같고, 아버지라는 지칭이 좀 걸리는 면도 있습니다만 현실과 상상을 잘 조화시켜 슬픔을 아름답게 드러낸 점이 뛰어나다 하겠습니다. 하여, 주 장원으로 선정하는데 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 들꽃 향기
  • 2006-01-24
1월 2주 장원

  이번 주에도 많은 작품이 올라왔습니다. 꾸준하게 글을 올리는 필자들과 새로이 등장한 이들도 꽤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는 짧아서 다른 장르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   이번 주에는 크게 눈에 뜨인 작품이 많진 않았습니다. 많은 작품을 올리긴 했는데 작품 한 편 한 편의 완성도에 집중을 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필자들이 제법 있어서 좀 아쉽더군요.   막사발님 <프린터기> 같은 작품은 소재의 연결이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개성적인 느낌을 주었습니다. 너무 많은 곳에 시선과 힘을 분산시키지 말고 작품이 될 만한 것에 몰두하기 바랍니다. 아네모네님 <코 고는 소리>도 후반부에 가서 설명적이 되지 않았다면 훨씬 선명한 작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성시인도 그렇지만 '덜 된' 작품은 늘 지나치게 부족하거나 너무 넘치거나 둘 중 하나인 때문이지요. 부족한 인식을 채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너무 지나치게 설명하고 보여주려고 하지 않도록 자제력을 길러야겠습니다.  이번 주에 가장 흥미있게 본 작품은 消雨의 <뒤비>입니다. 처음에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쓰다가 (시 속의 화자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렇게 써 나가는 것이 예사로운 건 아니지요.) 뒤로 가면서 하나씩 밝혀내는 솜씨가 훌륭했습니다. 할머니들의 구수한 말투와 따뜻한 두부, 비지 모두 잘 어울리는 소재들이었고요. 요즘도 이렇게 두부를 집에서 만들고 서로 나누어 먹는 훈훈한 동네가 있다니 부러운 생각이 드는군요. 消雨님은 지난 주부터 주목해 왔는데 발전이 눈에 뜨인 것 같아서 기쁩니다. 할머니가 만드신 따뜻한 '뒤비'를 독자들 모두 즐겁게 먹었을 겁니다. ^ ^     ************     뒤비    /  消雨

  • 들꽃 향기
  • 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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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우영

    다시 뵙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키신 걸로 알겠습니다. 그동안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이 공간이 이렇듯 활발해진 것도 선생님 덕분 아닌가 싶군요. 벅찬 시집,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 2006-02-14 12:36:49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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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 오책님도 축하드립니다 건필하세요!

    • 2006-02-08 23:19:4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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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ㅂ=!!!!!!!!!!![두둥!!!!] 드...드디어 된건가요=ㅂ=... T^T크흑!!!! 됬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크흑! 앞으로 부족하지만 더 열심히 할게요!

    • 2006-02-08 23:18:5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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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옷, 오책님 권기웅님 축하드려요- 그리고 들꽃향기님 그동안 감사드립니다 - 앞으로도 종종 만나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 2006-02-07 21:42:2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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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그동안 수고 많으셨지요? 제가 모르는 것 있으면 언제든 여쭈어 볼께요.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 2006-02-07 19:16:3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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