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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선하차

  • 작성자 사라 지다
  • 작성일 2020-08-16
  • 조회수 2,459

울긋불긋한 얼굴을 성급히 가리며 , 웃는다. 검댕 묻은 파자마 입고 개천이 흐르는 다리 위에 주저 앉기. 너를 둘러싸고 둥글게 갈라지는 사람들. 나는 너의 함몰된 뒷통수에 이마를 맞댄다. 하나처럼 들어 맞는다. 내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멀리부터 점점이 찍힌 핏자국을 손으로 쓸어 본다. 이것이 너와 내가 이르게 치뤄야 했던 성인식.

 

   , 청춘은 아름답다며. 거짓말했어요.

  씨발. 그러게. 나도 속았어.

⠀⠀⠀⠀⠀

누구에게 속았는지는 나도 모르는 거야. 온통 거짓으로 점철된 것은 세상인데. 세상의 요철이 너와 나뿐이라서. 거짓을 이불 삼아 덮은 것은 길거리에 사는 너와 내가 되는 거야. 세상의 절대악은 너와 내가 되는 거야, 선아.

 

너와 쌍으로 야구 배트로 머리 번씩 터지고. 다리에 앉아 연초를 입에 꽂아 넣고 라이터로 붙인다. 내뱉는 숨에 가득한 무구한 물음들. 너는 부러 묻지 않지만. 투명한 얼굴에 무해한 폭소. 입에 유해한 담배. 그보다 우리 같은 청춘 해치는 붉은 . 너희에게는 붉은 피가 흐르지. 우리에게는 파란 피가 흐른다. 파란, 피가. 푸를 청에 쓰는 청춘보다도 푸른, 파란 피가.

 

희망을 덧댄 심장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알면서도. 너와 , 조악한 발음으로 희망을 말한다. , 히망이 뭔데.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에 잡은 네 손. 너는 아무 없다가, 그럼 절망은 뭔데. 묻는다. 네가 가는 . 멀리 버리는 .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자, 선아. 너와 나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가자. 다시는 머리와 머리가 깨지지 않게. 우리 언제 어디서든 하나로 맞붙을 있게. 그렇게 올라탄 것은 택배 트럭. 문이 열린 사이로 몰래 살금 올랐다. , 너무 깜깜하다. 괜찮아. 냉동 트럭 아닌 어디야.

 

  선아. 어디 있어. 보여. 멀리 갔어? 거야?

  , 어디 가요. 잡아요.

 

, 그때 토한다. 꽃을 토하듯이. 피가 동백처럼 붉다. 웩웩 우는 너를 달랜다. 나는 엉엉 우는데. 네게도 붉은 피가 흐른다고 말할 없다. 우리는 이대로 청춘이여야 하는데. 우리는 척척한 우기여야 하는데. 너는 혼자 벌써 바싹 마른 건기다.

⠀⠀⠀⠀⠀

  나랑같이살기로했잖아너그러면안되는거잖아나만두고가면안되는거잖아내가잘못했어예수님제가잘못했어요선이말고저를데려가세요태어나서죄송합니다죗값달게받겠습니다제발씨발선이를살려주세요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개새끼들아!청춘이라며!청춘은아름답다며!이개씨발새끼들아!

 

 

선아, 요즘 날이 미친 같다. 너와 내가 길가에 버려진 그날처럼. 너와 내가 무용한 희망 말하던 그날처럼. 너와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며 길바닥에 누웠던 그날처럼. 선선하고 무덥다. 사실 선아, 청춘 같은 애초에 없었던 거야.

 

너와 내가 앉았던 다리. 다리만 있더라.

우리가 연초를 물고 입을 뻐끔대던.

사라 지다
사라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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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머리판에 늘러 붙은 검붉은 피를 닮은 수치심을 들키고 싶지 않아 화장을 했지 조악한 분홍색 파운데이션 케이스를 열어 퍼프를 들고 얼굴을 내리 눌러 만든 인조 피부를 나는 사랑했던 것도 같은데   잘린 손가락이 만져지는 환상통을 겪으며 화장을 배운 적 없는 서툰 손길에 화가 나 온종일 피부를 긁어 버렸지 나는 갈린 손톱 따위가 궁금하지 않았으므로 늘 컨실러를 두껍게 바르고는 했지만   문득 고개를 돌리면 얼굴 없는 이가 기척 없이 앉아 있다 새파래진 입술을 떨며 알 수 없는 이국의 언어를 뱉으면 어느새 화장이 섞여 흐르는 땀, 얼굴에서 흘러내린 백탁액을 문질러 닦을 때면 내가 조금이나마 사람을 위하는 선량한 사람이 된 것 같았지   총구를 입 안에 넣고 엄지로 방아쇠를 당겨 봐요, 홍콩의 살인청부업자가 가르쳐 준 자살법이 구룡성채 안에서만 성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도심의 한 빌딩 벽에 빨간 립스틱으로 그래피티로 남겨 두는 미래를 본 가브리엘은 자신을 용서했을까   밤이면 건조기에서 말라버린 인형이 된 것 같은 느낌, 스케치북처럼 찢기는 영혼과 참을 수 없는 토슈즈의 감각, 나의 근육이 기어코 자멸하는 것일까   덩그러니 놓인 나체의 살을 태우고 뼈를 갈아 불에 탄 숲에 던져 놓을 이의 이름을 궁금해 하고 싶었다 이런 건 마치 꿈에서 자전거를 타다 팔이 부러졌던 이의 생각인 것만 같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웅크린 고개를 들고 눈을 감은 채 여린 이름들을 나지막히 불러 본다 그들이 나를 부른 것처럼, 그들의 부름에 대답하는 것처럼   그러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눈 내린 일요일 아침, 앙상한 나무에 걸린 햇빛을 오래 바라 보았다 눈이 부셨다

  • 사라 지다
  •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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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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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 지다
  • 20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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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민경

    사라 지다님 안녕하세요. 늘 반갑습니다. 시 잘 보았고, 제목을 비롯해 내용도 재미있었어요. 크게 이야기할 부분은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얘기하자면, 청춘이란 단어가 좀 많이 나온다는 것과 색채어가 많다는 것? 그 외엔 좋았습니다. 늘 응원합니다.

    • 2020-08-20 17:59:04
    권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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