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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 작성자 옥상정원
  • 작성일 2024-04-19
  • 조회수 110

그러니까 나는


잘못한 걸 알면서도 꾹꾹 쓰는 마침표 같아.

흐릿해진 산등성이를 가리키는 손가락 같아.

저기 좀 보라구, 그러나 모두가 눈을 감는 나른한 오후 같아.


깨진 유리 조각과 

눈 뜰 새 없이 왈칵 쏟아지는 봄 

그래, 여전히 작별인사 없는 벚꽃 잎 같은 거. 

그 모든 슬픔을 뒤덮는 비극의 연홍빛 원무 같아.


세상의 소음에 욕심부린 귓바퀴의 울먹임을 들어봐.

그러니까 말해보자면 해명 같은 것,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결이라고 믿는 삶 같아.


그리고 그는 말했지

가증스럽다고.


그러니까 너는 


오래된 헤어짐을 기약하는 청혼 같아.

손에 잡힐 듯한 풍경을 액자 속에 넣는 추억 같아.

감길 듯한 눈을 감게 해주는 어떤 확신 같아. 


내가 자초한 미래

다리를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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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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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상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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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상정원
  •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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