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은 지금도 있으나
- 작성자 유동근
- 작성일 2006-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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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8
- 조회수 791
흰 바람벽은 지금도 있으나
가을이 가면 겨울이 안 올리 없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겨울은 남아서
한동안 머무르다 봄이 오면 사라진다.
눈이 많이 내린 올 겨울에
나도 흰 바람벽 앞에 누웠다.
땀이 후끈하게 흘러 내려 고이고
스위치를 잘못 건드리면 발이 익어 버리는
보일러 방 그 품에 안겨서
따끈한 감주보다는
얼음 띄운 콜라 한 컵을 바라며 안락히 몸을 뒤집는
내게도 고민거리가 없지는 않았나 보다.
까짓것
나도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내게도 흰 바람벽 위로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가는데
두 눈을 연신 비비기도 하고
벽 위의 낙서를 찬찬히 살피기도 하고
내가 하늘이 내일 적에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인지
십오 촉 전등 대신
길쭉한 형광등 아래서 생각하다가
시계 바늘 가는 소리와
콜라의 얼음 녹는 소리까지 들리는
적막으로 모두 얼어 붙으면
문득 꿈에서라도 깬 듯 텔레비전을 켠다.
아마도 백석 시인은 가난해서 굶주렸을
오죽하면 눈에는 대구국이 보였을
분명 배고파서 별 헛것을 다 보았을
하고 의심이라도 해 보다가도
종래에는 그것마저 다 잊어 버린다.
그래도 겨울은
사라지지 않고 또 남아서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가로등 옆 TV 안테나를 지나
내 방 바람벽 위로 글자들을 새긴다.
눈물로 바람벽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나 와서 보라고 글자를 남긴다.
벼랑빡이라고 안하고 바람벽이라고 하려니 영 귀찮군요.
패러디는 아닙니다. 다만...
요즘 제 시가 필요 이상으로 길고 관념적인 것 같아서
짧고 쉬운 시를 지향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지막 광기를 발휘하여 최대한 길게 호흡도 길게 써 본 겁니다.
말 그대로 써 본 거구요...
그러니까 너무 뭐라고들 하지는 마세요.
저 상처 받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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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동근
- 2006-12-20
가을도 다 지난 오늘날이 뜨뜻하더니문득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났다. 날이 따뜻하면좋을 줄 알았다. 귀뚜라미도 울고들려온 작별소식이 울고 집안 어디에 귀뚜라미가있나하고 둘러보려다그만 두었다. 감쪽같이 비어버린국그릇의 울음소리가 났다.
- 유동근
- 2006-11-29
복어 12 정말로 많이 아팠으나아무도 위로해 주지않았다. 속지 않으려고만 한다.몸이 부어도.
- 유동근
- 2006-11-2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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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전당에 가보심 그의 얼굴이...
매력적인 외모...? 어딨음? 얼굴이?
허헉...
어려워요 ㅠ
매력적인 외모처럼 <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