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 작성자 애화
  • 작성일 2006-07-11
  • 조회수 743

 

책상 구석 육면체 네 각 귀퉁이 툭 튀어나온 광대뼈 밑 움푹 들어간 데 머리카락이며 실 터럭이며 먼지조각이며 그리움이며 괴로움 따위가 한데 뭉쳐 새앙쥐 마냥 바싹 웅크려있다.


후 하고 바람을 불면 형형한 스탠드 낯선 불빛아래 살 아래 오래 묻혀 파르스름한 실핏줄마냥 뾰족 구두 끝 같은 빤질한 코끝을 밝혀 허공에 드문 돋아나는 새초롬한 모습이다.


또 그대가 떠오르고 내 안 웅숭깊은 항아리 까아만 독 밑 고개를 박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대가 모진 바람에 밀려 하염없이 떠오르고 이내 수면에 소금쟁이 발자국 같은 꾹꾹 찍어 누른 점점이 썰물에 밀려나 어느덧 그대가 내 안 둥우리에 선하게 낮잠으로 돌아와 나는 한낮의 그믐달처럼 서러웠던 것이다.


허나 언젠가는 그대도 서까래가 무너진 둥우리를 박찰 때가 있어 나는 마침내 앙다문 회한의 요철을 낡은 책장처럼 펄럭여 그대를 오랜 앙금으로 놓아둘 날도 있을 것이고 늦은 저녁 어스름한 별들을 헤며 휘파람을 피리처럼 휘휘불어 새까만 추억의 긴긴 꼬리에 불을 놓을 날도 있을 것이다 꼭


쥐구멍에 볕 들 듯.

 

 

-----------------------------------------

에.. 권혁웅 시인 풍으로?

애화
애화

추천 콘텐츠

한여름의 귀뚜라미

어느 날부터인가 어릿한 내 귓가에귀뚜라미 한마리가 조급한 빚쟁이 마냥 들어앉았다.  재작년쯤에 방충망을 타고 지릉지릉 울어대던 한여름의 귀뚜라미.  아파트 6층이란 까마득한 높이, 그래서 놈은제 날개를 허공에 달아 하얗게 새도록 부벼댔던가.  모래알처럼 잘게 부스러지던 날개, 이제는 떠나간 이의 눈썹처럼 여리웁고 아득한.  얼마나 절절하길래 이리도 사위가 고요할까그리워 엉엉 우는 밤은 부끄러워 몸을 숨긴다.  수차례 눈이 얼어 쌓이고 또 흘러내려도기적(汽笛)처럼 울어 보채는 저 귀뚜라미 소리.

  • 애화
  • 2007-12-06
나무

가로변에 나무들이 부목(副木)에 기대어 짐승처럼 늘어서있다.   가로수들이 짚어선 모양새가 알코올램프를 들쳐 맨 삼발이 같다.   거꾸로 돋은 다리를 앙상하게 내밀어 확확 달아오른 세상을 한껏 치받고 있다.   개중에는 다리가 부러져 침묵을 울컥 쏟아내는 놈도 있었다.   나는 뜨스운 입김을 머리위로 밀어내며 한 무리의 허공을 달싹 움직여 볼 뿐인데   한 인생을 멋대로 드놓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 떠올리고는 눈감아 아득해지는 것이었다.

  • 애화
  • 2007-12-06
도시의 눈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다.이곳은 마치 포격에 신음하는 병참(兵站) 같다.공중엔 찌그러진 달이 떠있고, 그 틈새로통조림처럼 싱싱한 달빛이 진득하게 배어나온다.서로의 어깨로 어깨를 파묻는 연인들속에선 군불을 익히고 있을 것이다.길옆에 개들이 젖은 신문지처럼 구겨져있다.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어제처럼, 바람이턱 아래 고드름을 오자(誤字)로 달아놓는다.수 만개 망명정부의 깃발이송전탑 위에 하얗게 쌓여 빼곡하다.이를테면, 옷깃 마다 가볍게 눈송이를 달고서길거리에 나부끼는 행인들은저마다의 왕국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불빛 아래로 깨진 술병 속으로몸 비빌 데를 찾아 엉겨 붙으면서도내일이면 싸르락 싸르락 흩어져버릴 왕국.오늘자 신문을 눅눅하도록 가슴에 품은 채소매 끝이 붉어지도록 눈물로, 땅 땅실탄을 박아 넣고서야, 사람들은화톳불처럼 포개져 잠의 불씨를 지핀다. 

  • 애화
  • 2007-12-06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익명

    김재현// 부끄럽지만, 얼마전 강산무진으로 김훈님 글에 입문했어요ㅜㅜ 평소에 시만 읽다가 시보다 더욱 아름다운 문장을 보니 눈이 환해지는 느낌입니다. 저도 이제 김훈 팬 할거에요!

    • 2006-07-12 18:44:30
    익명
    0 /1500
    • 0 /1500
  • 익명

    김훈님... 그런 문장으로 하나의 소설을 엮어낸다는 능력도 정말 경이롭죠. 강산무진, 읽으셨다니... 어쩐지 든든한 동지를 만난 기분이네요. 글틴에서 김훈팬은, 저랑 보헤미안 랩소디님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 2006-07-11 22:09:10
    익명
    0 /1500
    • 0 /1500
  • 얼빵

    (아래 제말이 진담이면 난감)

    • 2006-07-11 03:01:00
    얼빵
    0 /1500
    • 0 /1500
  • 익명

    남자분이라니. 쳇(농담?)

    • 2006-07-11 02:59:29
    익명
    0 /1500
    • 0 /1500
  • 얼빵

    에이 에이~ 다알아요 애화씨 이리와~ 명예전당 사진이 잘생겼던데요 //ㅂ// 후흣 (전 男

    • 2006-07-11 02:41:51
    얼빵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