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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나무(수정)

  • 작성자 김솔
  • 작성일 2006-08-08
  • 조회수 116

티없이 맑은 하늘 위엔 맑은 물이 일렁인다.

그 물로

누가 닦았을까.

누군가가

구름을 하늘에 포옥 적셔

삼나무 이파리를

한잎 한잎

하웁게 닦아내었다.

 

어느 꼬마천사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인지

벌을 받는 것인지. 

 

그런데 대체

누가 닦았을까.

얼마나 깨끗이 닦았으면

노오란 여름 햇살이

거기에 살짝 내려 와

머물러 앉았을까.

 

또옥 한 이파리 따서 보니

파아랗게 햇살 앉은 자리만

궁둥이 자국이 났다.

김솔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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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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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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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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