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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의 유품전에서(1)

  • 작성자 LittlePoet
  • 작성일 2007-09-02
  • 조회수 670

 

천상병 시인의 유품전에서(1)

 

늙은 시인의 무덤에는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줄 알었다.


주름진 강물을 따라, 이제는 하늘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유서 깊은 눈물, 저마다 한숨으로 토로하는 역사들과

나와 너의 손에 쥐어 주고 팠던 달고 쓴 소리들.

여느 사람이면 침 한 덩이 되어 술잔에 뱉어내다

술잔이 못내 작아 꽃 한 송이로 남았겠지만,

시인은, 늙은 시인은 잉크 한 병 되어 원고지에 부은 것이

더미를 이루어 높은 탑을 쌓아 놓았으니

그의 무덤은 더 이상 할 말도, 피울 꽃도 없을 줄 알었다.


이 곳, 그의 무덤을 향하는 마산의 간이역에서-

저기 나에게 손짓하는 꽃이파리들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시인 천상병은 없고-

오로지 그의 주걱턱과 끽끽대는 웃음만이

투명한 유리장 속에서 나비처럼 꿈틀대는데-

가난이라는 벼슬 받고서 하늘나라에 일하고 있는

그는 어떤 꽃이 되어 나를 보고 있을까?


차가운 빗줄기가 서늘한 현관을 적시고

기나긴 장마려나, 어느 사내는 쑤구린 채 작은 신발을 토닥인다.

이런 날엔 회상回想이 제격이라고,

검은 눈을 깜작거리며 조는 듯이 휘말려가는 어제

그곳엔 거칠게 휘몰아쳐가는 파도 위에 중심을 잡고 선 주옹이 있었다.

참, 생각해보면 영화映畵였제- 어쨌든 스쳐가는 필름일 뿐.

조조早朝의 시간, 텅 빈 객석에 홀로 앉아 새벽빛에 반짝이는 이슬을 보며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노라고, 그저 웃으면 그뿐.

뭘 어렵게들 생각하려는 건지-


그리고 사나이는 카페 문을 박치고 빗방울을 맞이한다.

찬비를 입속으로 가글거리며 하늘을 향해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끽끽-먼데서 오는 엄마를 부르는 아이같이,

귀천도- 두견새 한 마리가 빗속에서 울고 있다.

귀천도, 귀천도- 나는 비를 피해 처마에 앉은 새 한 마리.

귀천도, 귀천도, 귀천도-


또다시 나의 머리 위를 빙빙 도는 진달래꽃 목걸이-

허공을 향해 손짓하건만 잡히지 않는 그의 꽃이파리.

뻑뻑한 세상 속에 폐쇄된 채 시 쓴답시고, 아름다운 영혼이라고 으쓱이는,

나에겐 좀체 와 닿지 않는 그의 웃음소리-

그러나 오늘 이 곳에서, 그의 웃음이 잠시 머물다 간 뒤로,

잠깐이나마 나는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가 세상에 미처 뱉지 못했던,

빗방울을 닮은 그의 눈물을 말이다.


귀천도, 귀천도- 여기저기 들리는 새의 울음소리에

나도 서툴게나마 그를 따라해 보았다.

-귀찬다, 귀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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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진난만한 웃음

작년 이맘때쯤인가 여름때인가 쓴 시네요...

제가 마산 사는데, 작년에 마산문학관에서 시인 천상병의 유품전을 했었지요....

학보사(교내 신문부)였기 때문에 취재차 후배들과 같이 갔었습니다.

 

가 보니까 교실만한 방의 네 모서리에 유리장이 진열되있고 그 안에 그의 유품들이 많이 있더군요. 방의 앞쪽에는 그의 웃음이 보이는 커다란 사진과 함께 유명한 시 '귀천'이 걸려 있었습니다. 여자 성우가 낭독한 듯한 오디오 소리도 들려나오고-

 

재밌더군요. 관리하는 아저씨가 학생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온 건 처음이라며(기껏해야 6명인데, 그때까지 인기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기쁘게 맞아주셨고, 일행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귀천을 낭독해 보기도 했어요.

 

사실 천상병의 시라면 <귀천>밖에 모르던 시절(수능 출제 가능성이 높은 게 그거 뿐이니까)에 천상병의 시를 친필 원고로 읽으며 많은 감동을 느꼈고, 수식없는 직설적이 어투가 주는 진정한 감동을 시인의 삶과 어우려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식을 잘할수록 좋은 시다, 라는 저의 잘못된 시론을 통째로 흔들어주었죠.

 

그리고 나서 집에 와서 컴퓨터로 그의 이력을 보고 그의 작품을 탐독했습니다. 우리 고장의 시인인데 그냥 무심코 넘겼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말이죠. 그의 시에는 삶의 진정성이 녹아있었습니다. 삶 자체가 시라는 어떤 사람의 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지요.

 

그리고 나서 일주일 동안 그에 관한 시 3개를 지었는데, 사실 이것에 관해서는 그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첫번째 작품인 이것은 원래 절반만 지어놓았었는데(전개하기가 너무 까다로와서) 오늘 완성지었구요. 많이 서툴지도 모르겠군요.

 

*참고로 이 시를 짓는 데 참고하거나 인용한 천상병님 작품은 <새>,<귀천>,<장마>등입니다. 본문도 올려놓을게요.감상해보세요.

 

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
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나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

정감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여 너는 낡은 못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장 마

7월장마 비오는 세상
다 함께 기 죽은 표정들
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

이런날 회상(回想)은 안성맞춤
옛친구 얼굴 아슴프레 하고
지금에사 그들 뭘 하고 있는가?

뜰에 핀 장미는 빨갛고
지붕밑 제비집은 새끼 세 마리
치어다 보며 이것저것 아프게 느낀다.

빗발과 빗발새에 보얗게 아롱지는
젊디 젊은 날의 눈물이요 사랑
이 초로(初老)의 심사(心思) 안타까워라-
오늘 못다하면 내일이라고
그런 되풀이, 눈앞 60고개
어이할거나
이 초로의 불타는 회한(悔恨)-

다음으로 이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에요.

 

주막(酒幕)에서
-도끼가 내 목을 찍은 그 훨신전에 내 안에서 죽어간 즐거운 아기를 <장쥬네>

골목에서 골목으로

저기 조그만 주막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 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 가는데,

할머니 등 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 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

 

Little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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