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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死念) -김수영의 ‘이혼취소’를 읽고

  • 작성자 병든 수캐
  • 작성일 2010-08-08
  • 조회수 378

당신이 여전히 날 기억한다는 것이 이렇게 좋군

서로가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가자는 나의 말에

드디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던 이 년 전 그날

당신에 대한 미치지 못할 감정들을 내 멋대로

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보다도 좋을 수가 없어

그때 나는 부족한 언어로 무엇을 그려 보이려 했는가

이쯤 했으면 다시 돌아설까 아니 저쯤 가서 돌아서자

저쯤가서 돌아서면 당신이 나를 반길까 그래 조금은 더 가고 나서

나는 당신의 반대쪽에 있는

이 길을 가보고 저 길을 가보고

다시 이 길을 가보고 저 길을 가보고

유명한 시인의 목소리를 가져도 보고

무명시인의 노랫소리를 들어도 보고

그러다 이제는 김수영의 시를 조잡하게 따라 베끼고 있으니

천생 나는 시인이 될 수 없지 않겠는가

이다지도 진실성 없는 내가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군 그래

이제 당신의 슬픔에 나도 참여시켜 주기를

당신이 토해낸 울분과 비례하는 메마른 얼굴

내 손등에 스치는 당신의 가녀린 손가락이 민망하기만 하네

소중한 J여 

존재하지 않는 신만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 뒤에 그림자로 존재할 터이니 그러기 위해서

당신만 나를 잊어주기를

병든 수캐
병든 수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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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벗의 편지는 주름진 종이 위에서도 빛나는 글씨 나를 향한 그의 시선은 그윽하면서도 날카로워 본질을 잃은듯한 친구의 모습을 걱정하는 마음 애써 꾸며진 모습이 나와 어울리지 않다는 것 함께한 세월이 고자질하였나 냉기가 스며든 내장은 더는 위선을 참아낼 수 없다고 요동치는 배를 부여잡고 메말라서 터져버린 입술 피를 머금어 부어오른 발등이 더는 보행을 허락하지 않아도 내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오직 작지만 단단하고 오랜 세월 함께한 벗의 어깨가 있기에

  • 병든 수캐
  • 2010-12-24
거울들에 둘러싸인 밤

유리창을 비집고 들어오는 차단한 바람에 으슬으슬 추워지는 데도 유독 머리만은 뜨겁게 달구어져 목구멍도 타들어 갈듯해 거울들에 둘러싸여 열여섯 명의 나와 마주하면 대화는 할 수 있으나 소통은 할 수가 없어 그래 악수하지 못하는 민망한 손은 차라리 잘라버리고 싶어 평생을 따라다니는 낙인이 망각과 각인을 넘나들며 결국은 오늘마저 찾아오네 나의 고독은 언제나 부재하는 당신이 낳은 값싼 감정일 뿐이라고 그러나 내겐 그따위 감정을 표출할 자격조차 없다고 밤새 열여섯 명의 나와 회의를 했어 그런데 말이야 왼편에 앉은 못난 사내도 오른편에 앉은 못난 사내도 마주 앉은 못난 사내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도리질하거나 턱을 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말은 하지 못하고 그저 답을 내놓으라 윽박만 지르네 짧은 꿈에는 너무나 많은 당신이 섞여들어 가 있어 난 그 모든 당신들을 기억할 용기가 없어 단 한 사람만을 아끼지 못하는 내가 불쌍해 단 한 곳만을 향하지 못하는 문장은 역겨워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봐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지?   시끄러워.

  • 병든 수캐
  • 2010-12-24
쉰소리는 집어치란 당신에게

쉰소리라도 내야 외롭게 떨어진 뚝섬들에 배다리라도 놔줄 수가 있겠지 그 다리 비록 거친 풍파 속에 쉽게 헤어지더라도 교류가 없는 땅 조각들 잠시나마 서로 이어줄 연결고리 필요하지 않겠나 쉰소리라고 헛소리라고 마음껏 말해보게 섞이지 않고 속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썩어가는 고립일 뿐이네 진정한 고독이라 불릴 수 없으니 착각하지 말고 자네도 배다리를 놔보지 않겠나

  • 병든 수캐
  • 201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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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좀 더 구체적인 정황으로 언술하면 좋겠구, 인용이나 패러디 구절은 따로 표시를 하거나 언급할 것.

    • 2010-08-12 16:05:1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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