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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주 주장원

  • 작성자 꽃피는돌
  • 작성일 2010-09-27
  • 조회수 115

수다방

        -호필

불쑥 튀김집에 임대 광고가 붙었다.

벽지에 달라붙은 기름내는

계약서 펜 끝에 엉겨 있었다.

튀김집 간판은 제자리였다.

벽지 구석 방문자의 낙서처럼.

기름 자욱에 먼지가 내려앉을 즈음,

허름한 계약자는 새 간판을 내걸었다.

'수다방'

전혀 수다 떨고 싶지 않은 작명센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발걸음을 집어삼켰다.

누런 벽지, 낡은 의자와 테이블이 전부였다.

미각을 자극하는 특별한 것도 없었다.

단지 혀놀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난 나와 다른 이에게.

서로 다른 고민을 끊임없이 말해나갔다.

일용직 노동자는 비 오는 날 초라해지는 수다를,

수능을 앞둔 학생은 부모님을 짊어진 수다를,

시한부 환자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는 수다를,

누구의 어머니는 자식의 실패에 뼈를 깎는 수다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해도 수다는 터져 나왔다.

좌절, 고통, 아픔을 한 마디 한 마디에 담아냈다.

새벽부터 시작된 수다가 끝나고 나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픔에 살이 돋아나듯이 따뜻하게.

서로의 아픔을 껴안고

수다방에서는 아픔을 아픔으로 보듬고 있었다.

수다방에서 그들은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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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평>

 연휴가 끼었던 이 번주에는 '호필' 군의 <수다방>을 선착으로 놓았다. 실제 수다방이라는 곳이 존재하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시편은 상황을 풀어내는 상상력이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부분적으로 세밀한 묘사는 하찮은 것들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는 묘사력에 값한다 하겠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아픔이 수다라고 하는 다소 가벼운 말부림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수다방에서 찾은 눈썰미가 재치있다 하겠다. 다만 좀 더 구체적인 상황의 재연 속에서 수다방의 풍경이 보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너무 해피엔딩의 결말을 향한 글의 마무리는 현실적인 공감을 반감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여러 처지에 놓인 사람들 만큼이나 여러 종류의 수다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 더 재미있는 수다의 풍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눈여겨 본 시편으로는, '무색유령' 군의 <우산>이었다. 요즘처럼 비가 잦은 때에 가장 가까이 접하면서도 쉽게 시의 품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사물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는 눈썰미가 재치있고 재밌다. 좀 더 압축하면서 1인용의 우산도 2인용 이상으로 들여다보는 내용을 좀 더 도드라지게 인상화시키면 더 좋을 듯하다. '뜰에봄' 군의 <색깔을 읽는다> 역시 어쩌면 하찮은 일상의 버릇이나 습관적 행동에서도 시의 기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대견하다. 시가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은 그런 관찰과 관심에서 나오는 것이겠다. 색깔을 읽는 것만큼이나 그 빛깔을 받고 있는 활자의 속내나 뉘앙스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겠다 싶다. '농조' 의 <선(線)>은 간명한 문장 속에 여러 사물들을 선으로 풀어내려는 콘셉트가 참신했다. 다만 그것이 좀 더 구체적인 실감으로 와닿을 수 있게 사물을 감각화시키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괴테' 군의 <거지>는 그 내용상으로 보면 참신한 면도 있고 교훈적인 실제감도 있어서 시가 아니더라도 되새겨 읽을 만한 구석이 충분하다. 그만큼 생각하는 측면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내용을 공감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의 재연이랄까 인상화 작업이 곁들여지면 좋을 것이다. 'sad소녀' 의 <살인마>에도 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이 시적 메시지로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그것을 공감하게 하는 구체적인 장면이나 상황에 대한 견인이 필요해 보인다. 그것은 뭔가 보여주는 것이다. 'JLG' 의 <비와 달, 캄캄한>은 사실적인 정황의 공감보다는 비사실적인 분위기의 공감에 더 초점을 맞춘 것이 나름 느껴지는 바가 세련돼 보였다. 다만 그럼에도 좀 더 구체적인 요소들을 합성하는 시도가 결합된다면 더 분위기 있는 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팽글' 의 <북>은 말의 유희를 통해 시적 대상에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기법적인 접근은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식상해질 수 있다. 북/북 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나름의 절실한 문장 하나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후르츠칵테일' 의 <피아노짐승>은 어떤 인상적인 분위기로 한 사물의 또 다른 측면을 상황적으로 보여주는 발상의 재미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춘 채 그 설정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전개하는 데 작위적인 구석이 있다. 상황을 좀 더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서 풀어내면 좋지 않을까 싶다. 피아노도 당연히 가축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긴 연휴가 끝났다. 시가 쉬었다면 좋을 것이고, 또 시가 쉬지 못했다면 그것도 나쁠 것이 없다.

꽃피는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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