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보고싶은 사람

  • 작성자 밀랍의날개
  • 작성일 2011-04-02
  • 조회수 223

지금보다 머리가 땅에서

가까울 때

중학교라는 곳을 들어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겨우 겨우 햇빛을 받아먹을 줄 알게 되고

바람에 몸을 맡기게 될 줄 알게 될때

선생님께서는 작은 새싹들에게 당부하시곤 했지요.

낮에 눈을 뜨지 말고

밤에 눈을 뜨거라.

낮에 꿈을 보지 말고

밤에 꿈을 보아라.

당신은 나의 손을 잡고 보여주었습니다. 해가 아니라 달을 말입니다. 달이 버티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홀로 버티시며 나에게도 그 길을 따라오라고 말입니다. 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낮도 밤도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저는 종합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당신은 나를 꾸짖었습니다.이미 화학비료에 손을 댄 나를 보고 한숨을 쉬셨습니다. 밤을 잊기 시작한 나를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올라가고 나서 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수행평가에 했던 작은 글을 보고 주변친구들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글을 써보는 것도 괜찮겠네. 그 때, 정말 그 때, 떠오르고 그리웠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 꿈을 안고 부모님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께 다가갔을 때 모두 나에게 달의 무게를 양손으로 재고서는 안된다, 손을 저을 뿐이었습니다. 국문과는 곧 굶는 과다. 국문과만 가지말아라. 그 때, 정말 그 때, 떠오르고 그리웠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성적을 기어코 확인하고 국문과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고 깨달아버렸을 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만든 꿈이 내 손안에서 부서지고 있음을 확인할 때, 그 때, 정말 그 때, 떠오르고 그리웠습니다.

발을 짓누르는 마음을 가지고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선생님은 잘 계시니? 우리 때 선생님들은 다른 중학교 가셨을 걸. 그리고 이문숙 선생님 내가 알기로는 다른 중학교 가시고 암투병하시는 것 같으시던데.

당신, 밤을 잊어서 죄송합니다.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걸 알리가 없었기에.

이제서야 밤 언덕 위에 서서 달을 바라보고 당신이 느꼈을 그 중력을, 버티고 버텼을 그 힘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는 이 사람이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당신의 정류장에서 당신이 들고 있던 스푼을 들고서, 가슴에 지니고서, 한밤을 보내고 싶다고 읍고하여도 나밖에 들리지 않는 그 소리일 뿐.

집에도, 학교에도, 학원에도, 그 어디에서도

시인의 밤을 읽어주시려고 하시던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같은 사람조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아 더

그립다고 울어도.

밀랍의날개
밀랍의날개

추천 콘텐츠

D-DAY 196

선생님- 저 이제 가도 되나요. 벌써 가려구? 잘 볼 자신있는 거야?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나 넘어가서... 난 새벽과 밤 밖에 모르는 멍청이. 검정 패딩을 입고 학원 밖을 나왔다. 봄인데 왜 이리 껴입었니- 난 새벽과 밤 밖에 모르는 멍청이. 버스 정류장 앞에 서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아. 버스 7018을 빤히 기다리면서. 자동차들 꼬리 뒤로 빠알간 시간들이 질질 끌려간다. 다녀왔습니다. 책상에 문법 책을 던진다. 수학으로 뜨거워진 머리를 책상에 올려두었다. 음절의끝소리규칙자음동화모음동화구개음화사잇소리현상 뜨거워진 머리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불을 끈다. 화장실로 간다. 수건이 어딨지- 뒤로 돈다. 세숫대야가 찬다. 발을. 울린다. 시간이 진동한다. 천장을 두드린다. 잊지 않았겠지- 터-엉, 내 고막에 노크. 발 뒤꿈치를 감싼다. 모래알같은 시간이 쑤신다. 따가워- 얼굴 위에 수건을 올린다. 마루로 나간다. 로션을 든다. 탁, 탁, 시간이 얼굴에 발라진다. 손에 짓이겨 피부에 스며든다. 잊지 않았겠지- 건조한 살을 꾹 꾹 찌르는 시간. 따가워-. 눕는다. 이불을 덮는다. 집 어디서나 맡을 수 있는 시간이 내 코를 간지럽힌다. 잊지 않았겠지-. 날짜를 슬쩍 본다. 지금은 자정. 벌써 D-DAY 195 압니다, 알아요, 네,네,네,네. 디지털 시계의 째깍째깍 소리. 그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요, 네,네,네,네.

  • 밀랍의날개
  • 2011-05-04
미친년

아마 너는 4층에 있었을거야. 3~40칸의 계단 위 내가 있었어. 수십개의 계단이 우리 사이에 있는 듯 그렇지만 모두들 알아. 수백개의 계단이 숨겨져 있는 걸. 나는 그 계단을 내려가기가 너는 그 계단을 올라가기가 귀찮았겠지. 귀찮은 거였을 거야. 너는 날 모르겠지. 나도 너를 모른다. 단지 같은 학교에서 있었다는 이유로 내가 이렇게 힘든 걸까? 힘들어서 누군가를 찾고 싶어 할때 내가 차라리 차라리 내가 어떤 일로 힘들었다던 가 무언 가로 기뻐했다면 변명이라도 했을 텐데 계단을 사이에 두고 나는 평소대로 졸고 있었다. 모르는 후배의 자살, 내가 올라왔던 계단이 저 밑의 계단이 부수어지는 것 같아. 누군가 올라갔으니 이제 내가 올라가는 것만 가득, 내가 올라가니 누군가 올라올 거라는 건 잊은 듯이. 이제 수십개의 계단 내려가면서 좀 웃어볼까. 무표정으로 쏘아보지 말고 잠깐 웃어볼까. 모르지, 미친년이라고 소문날지. 그래도 미친년이 될거야. 전교생이 미쳐야 되. 다짐이 아니라 후회야. 미친년이 되어줄게. 오르고 오르는 계단에서 지칠 때, 힘이 날 수 있는 건 내 앞에 누군가의 등이 보인다는 것, 하나, 저 사람을 앞지를 수 있다는 희망. 지친 앞사람을 밟을 수 있다, 내가 그 앞사람이 되어줄게. 미친듯이 질주하는 규칙을 깨는 미친년. 세상의 미친년이 되어줄게. 니가 조금씩이라도 삶의 숨을 잃지 않는 다고 하면 너에게 내 등을 내밀어줄게. 내 뒤의 너가 보일 때까지 멈추어 있는 미친년, 니가 나를 보며 사늘히 웃어보이며 달려올 때도 천천히 걸어가는 미친년 되어줄게.

  • 밀랍의날개
  • 2011-04-22
애도

서울 M고 어제 새벽 성적 하락 으로 인한 학생 자살. 그 다음 날 오늘. 수능이 1년도 남지 않은 고3에게는 일상적을 빠져나갈 출구. 떠들썩한 교실 학교도 부모도 입을 닫아 버린 죽음. 다음 시간은 그의 담임이 수업하는 시간. 아이들은 두가지 마음으로 가득찼다. 자습하자- 하루만에 사그라진 선생님의 목 소 리- 긴장된 자습 시간 묵념의 마음 속에 빼꼼 고개를 든 다른 마음 어떻게 죽었어요? 맨 앞의 아이가 거침없이 물어본다. 왜 물어보냐 그런거 옆의 아이가 툭 친다. 반짝 이미 들어버린 마음 아이들 속에 가득 찬 걸. 눈빛 속에 가득찬 그 마음. 어두운 산속에서 아름답고 차가운 도깨비불처럼 뚜렷히 빛나는 마음. 꼬옥 그 것을 처음 본 사람처럼 선생님은 멍하니 우릴 바라본다. 학생들의 일상적인 애도에 감동을 받은 듯.

  • 밀랍의날개
  • 2011-04-22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