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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했던 순간

  • 작성자 韓雪
  • 작성일 2011-07-17
  • 조회수 146

가장 행복했던 순간

 - 박목월 시인에게

 

제 인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들이 대학교 들어갔을 때도 아니고

손녀딸을 보았을 때도 아니에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에요

제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던 게 아니에요

마취가 깨었을 때

어렴풋하게

당신이 보여서에요

긴 시간,

돌아오지도 못 할 수 있는

제가 있는 수술실 앞에서

꼭 돌아오리라

건강하게 돌아오리라 믿고

장미꽃 한 송이

꼬깃꼬깃 줄기가 꺾일 때까지

붉은 꽃잎이 녹아 떨어질 때까지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당신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멋없는 그대와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하엾없이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에요

 

 

- 이 시는 박목월 시인의 아내, 유익순 여사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지었음을 밝힙니다

韓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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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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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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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雪
  •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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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당신은 내게 어떤 존재의 대상일까요.

    • 2011-07-19 16:38:0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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