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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파고들면

  • 작성자 낡은펜촉
  • 작성일 2012-12-14
  • 조회수 428

바다여,

돌연 세찬 물줄기가 그대에게 파고드는 것을

놀라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는 그저 그대에게 닿을 흥분에

미처 발을 멈추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이 남다른 강물은 날 적부터 콸콸콸 샘솟더니

제 정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내던지더랍니다.

어찌나 앞만 보고 달리던지 이곳저곳 굽이쳐

말발굽만한 곡류를 만들거나,

우레 같은 발소리에 겨우 잠든 소쩍새를 놀래키곤 하면서

이따금

물놀이온 아가씨가 떨어뜨린 모자를 집어

되돌아가 돌려줄 짬도 없이 참

그렇게 서둘더니

벌써부터 물맛이 짜답니다.

 

바다여,

이 뜨거운 물줄기가 그대에게 파고들면

부디 살포시 안아주셔요.

그는 참말 기특하게도

아버지의 마음을 가슴에 지니고

나팔관을 향하여 질주하는 한 마리 정자처럼

본능으로, 깊은 사명감으로 그대에게 다가갔던 것입니다.

어찌나 투철하던지 바위를 쳐부수던 패기도

낭떠러지를 만나면 멈출 만하련만

주저 없이 뛰어내려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도 잠시

파편을 끌어 모아 유유히 계곡을 빠져나가더랍니다.

 

바다여,

그대는 품에 안은 작은 강물이

어디로부터 흘러왔을까 생각하겠지요.

강물이 남긴 자취를 더듬으며 이곳저곳 옮겨가다가

투명한 눈물을 뻗어오는

붉은 가을산 하나를 바라보게 되겠지요.

문득 기억난 그 산의 이름을 되뇌이며

그대는 슬픈 파도를 소리 없이 철썩이겠지요.

낡은펜촉
낡은펜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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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낡은펜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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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강물은 제 속에 무엇을 담고 바다에 드는 걸까요.

    • 2012-12-18 17:14:3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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