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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며

  • 작성자 협궤열차
  • 작성일 2017-04-21
  • 조회수 190

흔한 승강기는 만원인지라 비집고 들어가기엔 K씨들의 눈초리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궁시렁궁시렁 발걸음을 계단으로 옮기는 나는

계단을 밟으며 위로 향하는 나는
무슨 불타는 때를 바라보고 있는가

 

무수한 철골들이 차곡히 내려앉아
껍데기로 가득한 이 몸은 버티지 못하고 우울하게 헐떡인다

 

톱니바퀴 다리와 레디메이드 팔을 우렁차게 휘저으며 오르기는 버겁다

 

하지만
시간은 벌떼의 춤사위처럼 흐르며
나의 의식이 이미 추억의 빨간 구름 위로 올라갔을 때
나는 가장 즐거워진다

 

너의 비참한 모습은 오늘내일 사라지는 연필의 날카로움과는 다르다

너의 울상짓는 얼굴에
나는 친숙한 이름으로 떠올라
너를 수줍게 움직이게 만든다

 

아, 불쌍한 꼭두각시 인형은
언제까지 이름없는 꿈들에 휘둘리는가
아픈 기억을 삼키며
무슨 불타는 때를 바라보고 있는가

협궤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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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협궤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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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협궤열차
  • 20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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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바람

    시적화자가 계단을 오르는 게 '승강기는 만원'이고 'K씨들의 눈초리' 때문인데 관념 혹은 의식의 흐름을 보이고 있어요. 일단 '무슨 불타는 때를 바라보고 있는가'(두 번 반복)가 중요한 구절인데 모호하답니다. '톱니바퀴 다리와 레디메이드 팔', '꼭두각시 인형'에서 화자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듯하지만 '우울', '불타는 때', '아픈 기억' '이름없는 꿈' 등이 구체화되면 시가 더 공감될 수 있을 듯해요.

    • 2017-04-27 11:43:31
    고래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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