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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셋째 주 우수작(17-23)

  • 작성자 고래바람
  • 작성일 2017-04-27
  • 조회수 255

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합니다. 아무래도 시험기간이 아닐까 싶어요. 저야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지 수년이 지난 터라 중간고사를 보는지 어쩐지 몰랐습니다. 게시한 시 편수가 확 줄어든 것을 보고 알았죠.

오늘은 바람이 세차게 불고 꽃이 지기 시작하는 군요. 다 지기 전에 실컷 구경들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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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협궤열차, <계단을 오르며> : 시적화자가 계단을 오르는 게 '승강기는 만원'이고 'K씨들의 눈초리' 때문인데 관념 혹은 의식의 흐름을 보이고 있어요. 일단 '무슨 불타는 때를 바라보고 있는가'(두 번 반복)가 중요한 구절인데 모호하답니다. '톱니바퀴 다리와 레디메이드 팔', '꼭두각시 인형'에서 화자의 처지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듯하지만 '우울', '불타는 때', '아픈 기억' '이름없는 꿈' 등이 구체화되면 시가 더 공감될 수 있을 듯해요.

 

 

쐐기벌레, <회복> : 기존의 '회복'에서 앞 연들이 추가됐군요. 기존 시에서는 마지막 부분만 수정됐고요. 시적화자가 둘인 것은 아닌 것 같고 한 명의 화자의 화법이 바뀐 게 아닐까요. 앞 부분은 '아이'에 대해 구술하듯 이야기해주고 뒷 부분은 '아이'에게 직접 말하는 형식이거든요. 아마도 아이가 누구인지 정보를 추가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어요. 윗 부분만 놓고 보면 퇴고라기보다 시 한 편을 다시 쓴 느낌이 든답니다. 12살 아이가 애처롭게 느껴졌어요. '뭐든지 빨리 배우고 뭐든지 잘 하고' '괴롭다고 하면 안 돼, 너는 다 자랐으니까' 등에서 아이가 타의에 의해 살다가 견디지 못해 병원에 입원하니까요. '걷고 또 걸었대'라고 하는데 기존에 있는 시에서는 화자와 아이가 달린답니다. '가고픈 바대로' 서둘러 가는 느낌이랍니다. 그래서일까요. 두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각기 다른 색깔을 보이고 있어요. 더 아이에 집중해서 시적정황을 구체화해보면 좋겠어요. 퇴고본을 봤을 때 저는 앞 부분이 좋았답니다.

 

 

세비, <인간실격> : 이 시는 산문적이나 리듬감이 있고 시적 형상화를 하려고 노력했답니다.그러나 이미지가 혼란스러웠어요. 제 깜냥으로는 어렵게 은행알을 연상할 수 있었죠. 그럼에도 머릿속에 박힌 주름이 그려낸 구름, 사람을 조정하는 색깔(전쟁), 칼로 그린 쌍꺼풀, 얼굴에 명암 색칠한다는 등이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핵심이 되는 시어 '떡'이 모호하게 다가옵니다. (떡에 대한 의미를 드러내려고 한 듯한데 드러나지 않았어요) 언어와 언어가 만나 이미지를 만드는데 이미지 속에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어렵게 감춘 듯합니다. 보다 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절한 안내도 필요하답니다.

 

 

흰구름범고래, <머리 없는 닭 마이크> : 기괴하면서 신기한 일이죠. 아마도 머리 없는 닭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머리 없는 닭은 마이크라는 이름이 생겼고 닭 주인은 돈을 벌었다는 거죠. 흰구름범고래 님 덕분에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네요. 이 시는 현상(마이크)과 현상에서 비롯된 사유를 자유롭게 펼쳐놓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시가 거칠지만 재밌게 읽었고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점이 좋았어요. 그러나 현상을 재현시킨 이미지들이 범람하고 사유는 직설적으로 표현돼 아쉽기도 해요. '당신'이 마이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혹은 '우리가 처한 삶'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이 느껴졌어요. 그러나 마이크의 삶과 동일시 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거칠게 늘어놓은 질문들도 자문이길 바랍니다.

 

 

 

 

이번주 고등부 우수작은 두둥!! <머리 없는 닭 마이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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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중등부 후보작과 우수작은 없습니다.

고래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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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고래바람입니다.   정든 글틴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글틴 친구들의 습작시를 읽으면서 한 세월을 보낸 듯 해요. 막상 시 멘토를 마무리를 하려니 여러 친구들의 이름이 스쳐갑니다. 첫 인사를 나눈 게 엇그제 같은데, 그 사이 몇몇 친구들은 졸업을 했고 몇몇 친구들은 새로 합류하기도 했죠. 수없이 많은 친구들을 시로 만났네요.   나중에 습작을 했던 이 시절을 돌아보면 오롯이 백지와 싸웠던 무수한 나날들이 떠오를 겁니다. 그러니 시를 쓰는 것이나 시를 읽는 것이나 맘껏 즐겼으면 좋겠어요. 시 습작을 즐길 수 없다면, 만약 입시나 시상에만 마음을 뺏긴다면 시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가보세요. 제 초심의 시는 '외로움을 함께(위로)해준 친구'입니다.   여기서 저는 처음 시를 썼던 고교시절과 조우하기도 했어요. 빈 노트에 낙서를 하듯 끄적였던 시, 감성에 젖어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던 관념과 상념의 시, 하루에 세 편 이상을 거침없이 토해내듯 썼던 시 등등. 제 마음을 가장 알아주는 친구라고 여겼지만 일방적인 제 마음만 풀어놓은 관계이기도 했어요. 이듬해 시인이었던 국어 선생님이 학교에 오셨고 담임이 되었죠.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노트 한 권 분량의 시편들을 선생님에게 보여드렸는데 불량식품에 비유를 했어요. 얼마나 열받고 속상하던지 저는 이를 악물었죠. 보란듯이 좋은 시를 쓰겠다는 오기도 생겼던 것 같아요. 아마 그때부터 시집을 읽고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써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 쓰기가 너무 힘겹고 어려워졌어요. 이전에 매일 썼던 시가 왜 불량식품인지 깨닫는 순간 창작의 고통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제 시에 대해 장단점 등 자세한 설명을 한 적이 없었어요. 단지 '관념적이다', '모호하다' 정도의 메모와 빨간펜으로 문장을 삭제한 줄만 가득했답니다.  이상한 것은 한마디 메모와 삭제되지 않는 문장 한두 줄만으로 선생님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느껴졌다는 겁니다. 그렇게 저는 아주 조금씩 시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시에 몰입하면서 시의 즐거움을 배웠던 것 같아요.   지금도  시가 친구라는 제 초심이 변하지 않았어요. 계속 시와 함께했으니까요. 때론 시가 제게서 멀어졌고 때론 제가 시를 멀리하기도 했으나 돌이켜보면 시는 제 곁에서 떠난 적이 없었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시와 저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관계에서 함께했던 것 같아요.  글틴 친구들도 시와 어떤 관계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아가 시를 왜 쓰기 시작했는지, 나에게 시가 무엇인지, 나는 시에게 무엇인지 등도요.   이번에 새로 오시는 시 멘토 선생님은 멋지고 훌륭한 분이랍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에게 즐거움과 자극을 선사하지 않을까 싶어요. 늘 응원할게요.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2017년 겨울에.

  • 고래바람
  • 2017-12-06
10월 월장원 발표

고등부 월장원을 발표합니다         첫째 주 /   백색소음, <마트료시카> : 시가 여운이 있군요. 인상적으로 봤어요. '우리는 누군가의 생의 오지'가 좋았습니다. '마트료시카'가 주는 이미지와 (글을 쓰는 듯한) 시적화자의 개인적 사유가 맞물리고 있어요. 화자의 상황이 더 부각되면 좋겠어요. 화자가 깃털이나 앵무새로 비유된 것이 분명한 이미지를 그리지 못해 아쉽네요. 다소 이미지들이 모호하거든요. 또한 '생활이 없는 이곳'과 '우리'를 구체화시켜보면 어떨까 싶어요. 은유적인 선명한 정황이 펼쳐질 수 있을 듯해요.     둘째 주 /   멜랑콜리다성, <뼈 같은 너에게> : 재밌게 읽었어요. 뼈와 살의 관계를 내밀하게 표현한 시였답니다. 시적화자 안에 '너=뼈'가 있다면 죽어서야 뼈 안으로 화자가 들어간다는 것이 시적이랍니다. 그럼에도 툭툭 튀어나온 시어들이 걸리기도 해요. '여름', '파도', '외곽' 등이죠. '영혼처럼 흘러버리고'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무형의 영혼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이 오지 않거든요. 오히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모습은 형상화가 되니 괜찮답니다. 그러나 제목이 '뼈 같은 너에게'라고 했기 때문에 창작자는 '너'를 '뼈'로 비유했다고 못 박는 느낌이랍니다. 차라리 '뼈'라고 했다면 '너'에 대한 의미의 확장력이 있었을 듯해요. 독자는 뼈를 보면서 뼈와 같은 누군가를 상상할 테니까요. 좀 더 내밀한 '너'를 상상하면서 감상하겠죠. 직유법을 자제하면서 시를 써보면 묘사가 더 좋아질 거랍니다.   셋째 주 /   물개맨, <목에 물음표를 걸고> :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본문에서도 물음표를 형상화한 것도 좋았습니다. 근데 시가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닙니다. 긴 시는 긴 시 나름의 긴장감과 리듬이 있고 짧은 시는 짧은 시 나름의 긴장감과 리듬이 있어요. 형식과 내용의 차이나 취향대로 선택할 뿐입니다. 물론 짧은 시는 긴 시보다 이미지가 응축, 압축돼 있어서 시의 맛이 살아난답니다. 참고하시면 좋을 듯해요. 이 시는 시적화자가 '너'와 싸우고 멀어진 일을 후회하는 듯해요. 물론 화자는 '너'에게 물을 수 없어서 영원히 목에 물음표가 걸고 살겠지만요. 시만 보자면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은 아닌 듯해요. 친구를 통해 너의 소식을 듣고 있는데 미련은 남아있지만 직접 만날 용기가 없는 듯해요. 어쩌면 인연이란 건 보내야 할 때 보내고, 잊어야 할 때 잊는 게 아닐까 싶어요. 퇴고를 할 때는 지금보다 더 간결하고 응축된 이미지를 고민해보세요. 구어체로 화자의 감정이나 심정을 풀어놓아서 설명적이고 사족이 많아 보인답니다. 마치 변명을 늘어놓은 편지 같기도 하거든요.     마지막째 주 / 쐐기벌레, <내 이름은 헤이어> : 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군요. 덕분에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려봤어요. 앨리스가 거울로 들어간 세계는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이

  • 고래바람
  • 2017-11-23
10월 마지막째 주 우수작(25-31)

이번주 우수작을 선정했답니다. 대체로 관념적인 시가 많았습니다. 늘 강조하지만 관념을 어떻게든 구체화하는 게 중요하답니다. 아무래도 학생 신분이다 보니 여행을 다니기가 어렵겠죠. 몸을 움직이면서 시적 대상과 직접 만날 수 있고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해요. 집에만 있지 말고 나가서 걸어보세요.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보고 나무와 나뭇가지, 이파리를 보세요. 만지면 더 좋습니다. 바람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손에 닿는 감촉을 느껴보세요. 뭐든 주의 깊게 관찰해보세요. 마음을 보여주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마음에 빗댈 수 있는 대상을 찾는다면 어떻게든 마음이 구체화될 겁니다. 늘 건필하시길. —————————-         고등부         쐐기벌레, <내 이름은 헤이어> : 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군요. 덕분에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려봤어요. 앨리스가 거울로 들어간 세계는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순서를 바꾸는 세계죠. 제목이 '내 이름은 헤이어'인데 본문은 '그의 이름은 헤이어'라고 하니까요. 오마주든 팬픽이든 시는 고유의 이미지를 펼쳐놓고 정서를 담아내겠죠. 시적화자의 정서가 수동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워요. 보다 능동적인 태도로 전개되면 어떨까 싶어요. 그리고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비롯된) 등장인물이나 서사, 동화적 상상력 등이 매력적일 수 있지만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해도)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재창조 혹은 재구성했다면 더욱 상상력이 증폭될 것 같아요. 시 자체로 감동이 밀려올 수 있는 진솔함도 필요할 듯해요.     핑크징크윙크크림, <화이팅(Whiteing)> : 두 번째로 만난 시에서도 색채가 강렬합니다. 이번 시에는 댓글 조언이 많아서 흐뭇하군요. 제가 길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해요. 하얀, 흰이 압도하는 시인데 '푸르스름한 새벽에 우리는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는 구절이 두 번 나옵니다. 그것은 강조일 테고 시의 중심이 되는 구절이겠죠. 그런데 이 시는 이미지로 의도를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사유가 명확하지 않거나 사유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한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하얀 병원에서 살았다', '우리는 창문을 넘어 도망쳤다', '하얀 숨들이 안개처럼 숲을 메웠다', '오래전 우리가 질렀던 비명', '우리가 도착한 곳' '여전히 하얀 창문들이 딱 우리만큼의의 숫자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등. 여튼 우리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시적 흐름을 봤을 때 피상적으론 정신병원을 연상했습니다. 하얀색이 스스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고 의도를 좀 더 드러낼 수 있도록 퇴고해봤으면 좋겠어요.     달흔, <스무 살의 애> : '사랑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 자체가 너무 어렵군요. 시적화자가 스무 살에 어떤 선생님에게 묻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누구에게 물어보냐에 따라 화자의 의도가 나올 듯하거든요. 이를테면 전공 교수나 정신과 의사에게 물

  • 고래바람
  •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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