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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주님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수정본)

  • 작성자 민하늘
  • 작성일 2017-06-06
  • 조회수 168

나의 공주님이 되어주시겠습니까?
당신의 머리에는 금관을 씌우고
손에는 반짝이는 반지를
끼워줄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우리의 사랑이 불법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 세계를 탈출할 방법을 찾을게요
당신을 처음 만난 그 세상에서
함께 읽었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책을 다시 펼쳐들고
사랑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겠죠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목소리로
상식의 반입이 금지된 세계중앙광장에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에 대해 강연을 할게요, 맑고 또렷하게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을 금지하는 이 세계는 뒤틀린 세계입니다
목이 터져라 소리지르겠지만
이미 청각을 잃은 사람들은 아무도 듣지 못하겠죠
그러면 나는 또 절망에 빠져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순간을 떠올리겠죠
나는 당신의 장미빛 드레스도 아니고
당신의 비단같은 머릿결도 아니고
나는 당신이 오래된 책방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그 아름다운 책을 행복하게 맛보는 모습에 반했죠
그때의 당신의 그 아름다운 홍조와
반짝이던 두 갈색 눈동자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위해 금지된 그 책을 구하기 위해서,
또 이 세계를 탈출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금지된 세계 도서관에 발을 들이겠죠,
거기에만 그 방법이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계속해서 그들이 생각하는 위법을 저지르고
결국엔 잡혀가 당신을 만나지 못한 채 죽겠죠
사람들은 대부분 잔인해서
당신을 사랑한 나를 죄인으로 몰겠죠
마녀에게 홀려서 금지된 곳에 발을 들였다고
그러면 나는 오히려 크게 웃겠죠
애초에 모두의 것인 지식을 가둬둔 것은
그들의 잘못 아닌가요?
지식이라는 것은 꽤나 연약해서
사람의 손이 자주 닿지 않으면 금방 죽어버리죠
그걸 알면서도 가둬둔 건 그들의 잘못 아닌가요?
내가 이렇게 말해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은 나를 무시하고 가두겠죠
아주 깊은 지하감옥에
당신은 나를 위해 면회를 오겠죠
나는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당신을 맞겠죠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어
사랑하는 당신의 손을 잡으면
당신은 그 손에 이마를 대고 엉엉 울겠죠
울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모습이면
나 같아도 울 것이 뻔하기에
나는 그냥 당신 손을 잡고 함께 마지막 시간을 보내겠죠
나는 결국에는 장정들에게 끌려나가
세상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결국에는 단두대 위에 오르겠죠
아낙네들은 손수건을 있는 힘껏 뻗고
나의 잘린 목에서 흐를 피를 묻히려 애쓰겠죠
그 시간이 오면, 당신은 날 위해 울어줄건가요?
당신이 그래준다면 나는 너무 기뻐서 아프게 울겠죠
그럼 나는 죽어도 좋지만,
그러면, 그러면, 나의 공주님은 혼자 남겠군요

 

<지난 번 조언 듣고 조금 수정해보았습니다. 쓰다 보니 자꾸 감정이 격하게 뭉쳐들어가서 죽도 밥도 못 된 것 같긴 하지만 아직은 제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중이니까요. 지난번처럼, 화자가 남성이 아닙니다. 유의하여 감상해주세요! >

민하늘
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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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바람

    민하늘 님의 댓글을 보니 생각이 참 깊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는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시를 설명해야 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신 듯해요. 독자는 시를 감상하면서 창작자가 만든 시적정황이나 이미지 등에 상상력을 보태며 주제나 의미를 헤아립니다. 이때 얼마나 진솔하게, 객관적으로 표현했냐에 따라 창작자가 풀어낸 이야기에 감동을 받겠죠. 이 시는 시적화자가 서술하는 방식인지라 진솔한 느낌이 들지만 화자의 주관적인 사유가 부각돼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지 않나 싶어요. 더욱이 댓글로 설명을 들으니 어려운 시가 더 어렵게 다가왔어요. 서술하는 방식보다 특정한 장면이나 사건 등을 형상화(묘사)해봤으면 좋겠어요. 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다시 시를 꺼내보면 퇴고가 잘 되리라 봅니다. 응원할게요.

    • 2017-06-14 18:24:59
    고래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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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글자

    어떤 사랑을 말하고 있는 건지 질문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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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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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하늘

      저는 사랑이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란 개념은 꽤 추상적이니까요. 세글자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12행의 사랑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여기에서 저는 사랑을 모든 것의 대명사로 여겼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나의 공주님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전반적으로 나오는 '사랑'이라는 시어는 크게 '이성'과 '인류애'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성' 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의 유무에 따라 인간과 짐승이 구분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화자가 살고 있는 세계는 '사랑이 사라진 세계'라고 합니다. 즉 이 세계는 이성이 사라진 세계라는 뜻이고,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짐승과도 같게 된 것입니다. 그걸 증명하는 것이 바로 '금지된 세계 도서관'이죠. 화자는 지식이란 '모두의 것'이고 '사람의 손이 자주 닿아야' 하는 '아주 연약'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지식들을 필요한 것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않은 채 한 곳에 가둬버리고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지식이란 자주 사람의 손을 타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알면서도요. 이것에 대해 화자는 '알면서도 가둬둔 그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 이성이 사라진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금지된 세계 도서관에 들어가죠. 그러나 '그들'은 화자를 감옥에 가두고 온몸이 멍투성이가 될 때까지 고문을 가하고, 끝내는 단두대에서 죽입니다. 그렇게 죽은 화자의 목에서 틘 피를 손수건에 찍기 위해 아낙네들은 있는 힘껏 팔을 뻗습니다. 마치 프랑스 대혁명의 장면이 생각납니다(루이 18세의 목이 잘렸을 때의 장면을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이는 이성을 갖춘 현대 사회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금지된 곳에 출입했다'는 것만으로 사형을 당하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이를 두고 화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라도 합니다. 상식인 것과 상식이 아닌 것은 이성으로 충분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계는 이성을 잃어버린 세계라는 것이고, 화자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죽인 '그들'은 이성을 잃은 짐승과도 같은 사람인 것이죠. 이것은 두 번째 키워드인 '인류애'와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자는 '상식의 반입이 금지된 세계중앙광장'에서 '사랑'에 대해 강연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청각을 잃은 사람들은 아무도 듣지 못'합니다. 화자는 이에 절망합니다. 저는 청각을 잃었다는 것은 주변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현대 사회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단지 이웃간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미 현대인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것에도 벅차서 주변 문제를 신경쓸 여유조차 없죠. 그러나 결국 그 필연적 무관심은 귀를 닫은 그들 자신조차 갉아먹을 것입니다. 저는 요즘 사회적 이슈인 '동성애'에 대해, 더 멀리 나아가서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사회가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수가 적은 쪽의 생존권마저 위협당할 정도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지요. 이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러가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타인의 생존권을 손에 쥐고 흔들기도 하지요. 저는 이런 사회가 몹시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차별당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조금이러도 숨을 쉬고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왼손을 항상 잡고 있지 않았으면 합니다. 많이 두서없고 복잡한데다가 생각을 반도 담지 못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7-06-10 00:42:19
      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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