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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소년과 사자와 비둘기의 이야기

  • 작성자 민하늘
  • 작성일 2017-06-10
  • 조회수 244

한 소녀가 있었지
소녀의 겉모습은 소년에 가까웠고
여자아이를 좋아했어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상식이 있다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
다들 소녀에게
네가 남자같이 하고 다녀서 그렇게 착각하는 거야
라고 했지
소녀는 그 말 속에 담긴 혐오에 눌려서
질식할 것 같았어

 

소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지
대체 남자같은 건 뭐고 여자같은 건 뭔데
난 당신들이 말하는 여자같은 모습일 때도 같은 반 아이를 좋아했어
그게 뭐가 어떻냐고?
난 여중을 나왔어 그리고 여고에 갔고
난 지금 한 학년 위에 선배를 좋아해
그 언닌 웃는 게 아주 예뻐
참 맑은 사람
보고 있으면 딸기가 생각나 달달하거든
근데 그게 뭐
혐오할 권리를 찾지 말고 사람답게 대해
날 사람으로 대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혐오할 권리 따위를 논할 수 있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소녀는 귀를 틀어막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고 세상의 절반이 날아갔어
북반구가 날아간 지구에서 소녀는 점점 소년이 되어갔지
사람은 한 명도 없는 남반구만 남은 세계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막 한복판에 서서 소년은
춤을 췄지 마치 타조의 구애의 춤같은 몸동작으로
소년은 미쳐갔지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평화롭던 숲에 미친 사자가 들어와
사자는 토끼를 먹어버리고
사자는 사슴도 먹어버리고
샤자는 당나귀도 먹어버리고
사자는 다람쥐도 먹어버리고
그렇게 전부 먹어버리고
사자는 굶어 죽어버렸죠

 

소년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의 등어리에서 날개가 돋았어
소년은 신이 나 날아갔고
비행하는 동안 점점 작고 하얀 비둘기가 되었고
하늘의 끝에 있는 무지개를 찾으러 떠났지 그러다가
태양이 너무 뜨거워서 굶어 죽어버린 사자가 태양이 되어버려서

비둘기는 날개가 타들어갔고
결국 소녀는 죽고 말았지

 

그래서 세상에 상식이 없어지게 되었지 평화가 없는데 어떻게 상식이 있을 수가 있겠니 아가 이야기는 여기까지란다 이제 자야지 잘 자 안녕

민하늘
민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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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래바람

    '상식'이 뭔지 곰곰 생각하게 해줬어요. 재밌게 읽었어요. 아무래도 자기 전 누군가(보호자?)가 누군가(아가)에게 이야기를 하는 형식을 취해 이야기를 서술하는 데 힘을 썼군요. 그렇다보니 시가 이미지보다 설명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더욱이 주제를 드러내는 데 있어 억지스러운 설정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화가 없는 세상에 상식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아가가 잠들기 전 잔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의도도 궁금합니다. 소수자를 혐오하는 우리 사회를 극단적으로 비유한 게 아닐까도 싶어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창작자의 입장이 객관적인지 살펴봐야 해요. 편향적이거나 과격한 게 아닌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 2017-07-03 11:41:56
    고래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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