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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리's 퍼시픽 박스

  • 작성자 참치좋아루나
  • 작성일 2018-11-30
  • 조회수 611

쪼그리는 법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있어요* 태평양에 덩그러니 떠 있는 노란 박스 중 하나를 빌려 타고 수평선을 다리미질하기 위해 떠나는 일이죠

 

상자에 탄 포츠리는 보물찾기를 시작해요 몽당연필을 그물처럼 엮어 바다에 던져요 수면 위에 떠 있는 난파선을 끌어당기죠 포츠리는 조용하고 마녀 같은 여자아이에요 토끼 인형과 함께 바닷속에서 빈 깡통을 찾는 연습을 하며

 

굴러다니는 보물을 찾아다니다 가슴살 혹은 큰 단추를 가지곤 해요 길어진 다리를 꼭 껴안고 상자 속에 쪼그려 앉죠 수평선을 향해 떠나요 점점 커지는 몸과 가시가 늘어나는 상자를 타고

 

몇 초 전의 이상함이 좋아요 토끼 인형이 포츠리- 포츠리- 울죠

 

가장 오래된 골방에 있는 커다란 나를 조심성 없는 사람들이 들여다봐요 포츠리는 포츠리만의 쪼그리는 법을 연습하고

 

막대가 두 개 달린 립스틱을 빨아먹어요

 

*안희연, 줄줄이 나무들이 쓰러집니다

참치좋아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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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치좋아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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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치좋아루나
  • 2018-11-05
본 리스 이차원적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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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치좋아루나
  • 2018-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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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미

    안녕하세요 참치좋아루나님 반갑습니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어찌 지내고 계신지요, 제목이 매력적이다는 생각을 하면서 게시판을 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왜 참치좋아루나님이 유년의 이야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그게 잘 읽힙니다. 여기에서, 박스라는 것에 집중을 해서 시를 이어간 것도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소재를 너무 가깝게 잡을 필요는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몽당연필, 토끼인형, 보물, 립스틱 과 같은 부분이요, 특히 몽당연필을 던졌다는 말은, 몽당연필보다, 박스스러운 것을 넣어보아도 좋고, 저라면 내 몸의 부위 중 하나를 넣어볼 것 같아요. 그게 낚싯바늘에 미끼처럼 꽂혀 있는 듯한 것, 사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맥락이라면 수면에 있는 것들을 설명할 필요는 없어보여요. 조금 더 깊숙한 것들만 보여줘도 충분할 것 같거든요. 1연에서 수평선을 다림질하기 위해 떠난다는 전언은 없어도 될 것 같아요. ' "태평양에 (덩그러니) 떠 있는 노란 박스 /(중 하나)를 (빌려) 타고 (수평선을 다리미질하기 위해) 떠나는 일이죠" - 괄호친 부분은 없애고 읽어보셔도 의미는 충분히 전달됩니다. 태평양에 떠있는 노란 박스를 타고, 떠나는 일, 혹은 박스에 올라타는 일, 굳이 태평양일 필요도 없어요. 만약 여기에 다른, 바다 이름을 넣어봅시다. 카브리해, 인도양에 떠있는 노란 박스라고 하면 조금은 더 낯설어져요. 말 한 마디에 확 달라지는 게 시입니다. 이 점 염두해주시고요. 3연에서 가슴살 혹은 큰 단추라는 말은 조금 더 직접적으로 써주면 좋을 것 같아요. 몇 초 전의 이상함이 좋아요 라는 부분은 윗 부분을 시인이 상상해서 써 두고서, 이상하다고 다시 번복하고 있는 듯 해요. 그러니까 시인의 태도도 자신이 없어 보여요. 이상하다고 화자가 끼어들지 말고 그냥 토끼인형이 우는 내용으로 넘어가세요. 저 장면은 조금 이상하지 않니? 하면서 확인하는 듯 보여요. 이건 작품이고, 시이고, 시는 공간시간사건 등 어떤 기준도 없이 가능한 세계이므로, 상상하는대로 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 시에서는 조심성 없는 사람들이 들여다본다는 장면이 가장 잘 살아나야 시가 살 것 같은데요. 가장 오래된 골방, --> 골방에 있는 나를 사람들이 쳐다본다 혹은 훔쳐본다까지만 써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됩니다. 조심성 없는 사람이라는 설명도 없어도 될 것 같아요. 나 혼자 있는데, 사람들이 훔쳐보는 것, 혹은 박스에 구멍을 뚫고 점점, 밀고 올 것 처럼 커다란 눈동자를 갖다 대는 것, 혹은 그 구멍으로 바닷물이 콸콸 쏟아져오는 것 등, 저 장면에서 조금 더 공포를 극대화시켜줘야 쪼그리는 이유가 설명될 듯 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보여주세요. ^^

    • 2018-12-03 19:39:00
    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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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치좋아루나

    '유년'을 주제로 쓴 시입니다

    • 2018-11-30 23:51:19
    참치좋아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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