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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 작성자 랑뚜
  • 작성일 2019-01-06
  • 조회수 163

< 오늘의 주인공 >

 

오늘은 어느 연극이 관객을 모실지 기대가 되나
아니 나는 이 극장도 선택되지 않을 것 같소
무대 위 조명도 보지 않고 빈 객석은 꿈도 꾸지 마세
낮에는 조명이 켜질 가치가 없지
쓰레기더미 홀로 파헤치는 저 고양이가 무대 주인공
별밤에는 흰 웨딩드레스 입은 저 곰인형이 2막 조연
빛은 어둠이 있어야 가치 있는 법
네가 있는 낮 어느 어둠도 보이지 않으니 뻔하지
무대 뒷편은 항상 심해였으니 오늘 당신도 관객
F열 중앙 23번 자리는 어제의 명당
창문도 굳게 닫혀 관객의 옥살이는 환호로 가득 차고
어둠 저 너머에는 벌써부터 고양이의 실루엣이 파란 춤추네
그렇담 볼만 하겠소 F열 중앙 23번 자리는 도대체 얼마요
어제 주인공은 고양이가 아니고 저 쓰러진 노인이었고
곰인형은 조연은 커녕 골목 구석에 있지도 않았소
그럼 어제와 다른 공연 아니오
자네는 골목을 모르지 않았나 어둠도 보지 않는데
그게 무슨 말이오

 

지평선 너머 푸른 춤은 달리고 있으니
당신이 죽어갈 때 즈음 조명을 키겠소
어디서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무대아래에서 보면
F열 중앙 23번자리가 비어져있소
좌석은 당신에게 줄 수 있으나 볼 수 없을거요

 

자 그럼 무대를 시작하겠소

랑뚜
랑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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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곤증 나비는 어느새 꽃잎을 토하고 완전 변태해 가지를 떠나 허공에 힘을 실었다 기차 선로에 깔린 자갈로 날아드는 깊은 한숨에는 기사의 졸음이 스며있다 환절기 감기만큼이나 번져가는 한숨이다 지하철 맨 끝 칸 졸음이 옮은 어느 가방의 내일이 한 입 거리로 옭아 매이는 와중에 기차는 2호선 창밖의 허공으로 흐릿한 초점을 둔다 퍼덕이던 날개를 먼 허공에 흩뿌려 놓았다가 나비와 부딪히고 나서야 초점에 힘이 실렸다 한참이나 숨을 멈춘 기차가 제 꿈을 잃는다 졸음으로 길어오는 눈물 너머의 허공으로 기차가 울렁인다 맨 끝 칸 가방도 나비의 허덕임도 흔들린다 고개를 떨군 어느 가방에는 볼펜 두 자루 낡은 공책 흠집 난 노트북 기차 아저씨 짐칸에 실린 내일이 있었다 번져가는 한숨과 스며드는 졸음으로 기차의 창 밖에 나비의 날개가 흩어진다 가방도 기차도 울음을 게워냈다 무겁게 더럽고 천박하게 당연한 내일을 기다리고 말았다 기차는 어느덧 나비를 토하고 불완전 변태한 오늘의 숨을 뱉었다.

  • 랑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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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랑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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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랑뚜
  •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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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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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1-18 00:27:30
    권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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