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어릴적 tv에서 죽어가는 개를 본 적이 있다 숨을 헐떡이며 흰자가 눈을 채우는 모습이 네 다리가 축 늘어지며 짖지도 못하는 모습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누운 밤에 희마하게 생의 마지막 시간을 이어갔던 개처럼 희마하게 생각이 났다   개의 모습을 담던 tv 화면이 꺼진 것처럼 나도 시야를 꺼버렸다 어둠 속에서 잠에 들어야 할 나는 tv에서 봤던 개처럼 곧 죽어가는 백구로 환생했다 헐떡이는 숨, 흰자로 덮여가는 눈, 축 늘어진 네 다리, 짖지 못하는 주둥이...... 멎지 않고 한참이나 잦아드는 심장을 가진 내 꿈의 백구는 가슴팍을 주둥이로 물어뜯고 싶었다 소리가 잦아드는 동안 너무나 괴로웠기에 짖거나 달려가지 못하면서 살아있는 것들과 한 공간에서 홀로 죽어갔기에 고개를 숙일 기운도 없는 백구는 마지막 고통을 받아냈다 생전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고통을 그렇게 마지막 아, tv가 켜졌다 백구의 시간은 멈췄다 여전히 잦아드는 심장을 가진 채로......

• 백월14
• 2019-08-09

여름에는 매미가 운다 온몸을 찌르르 떨며 우는 매미는 여름에 산다 매일을 열심히 사는 그들에게 놓인 건 한 철이다 흙의 무게와 어둠의 아득함을 견딘 그들에게 주어지는 햇빛은 찰나이다 그마저도 다 채우고 죽으면 좋을 터 대부분이 잔인한 손에 몇 번 펴보지도 못한 날개가 잘려 나가고 온몸이 조각조각 뜯겨 나간다 그런 매미를 보며 '나라면 땅에서 나오지 않았을 텐데' 생각했다 땅 위의 시간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 캄캄한 시간을 견뎌내는지 한 철이 얼마나 길다고 그 외로운 시간을 묵묵히 참아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절대적인 시간으로 보았을 때 매미의 삶은 비효율적이기에 그러다 방충망에 붙은 매미를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숨을 크게 쉬다 뱉는 것이 흡사 악을 쓰는 사람 같았다 아니 고함을 지르는 사람 같았다 다시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소리 지르는 걸까' '저들은 저 삶이 행복할까' 아, 차 싶었다 스스럼 없던 생각을 스스럼 있는 생각이 가로막았다 간절한 순간을 위해 생의 대부분을 바치는 그들에게 내가 가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해 땡볕 아래 고함 지르는 그들에게 무엇 하나 해준 게 있다고 쉽게 말하는지 나의 오만이 매미의 울음을 타고 가슴에 박혀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 그때였다 내가 매미를 달리 보게 시작한 것은 짧은 소리 뒤 겪었던 시간을 겸허히 바라보게 된 것은... 여전히 여름에는 매미가 운다 온몸을 찌르르 떨며 우는 매미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던 시간부터 여름까지 산다

• 백월14
• 2019-06-30

책장을 넘길 힘이 있던 때에 보았던 지금은 작가가 의도한 바를 왜곡하여 기억할지도 모르는 그의 모습이 내 속에서 자리를 편다 얼굴은 모르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하나의 번데기 같이 누워 있는 형체만 아는 사나이 그는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뚱아리를 가진 채로 창을 거쳐오는 느긋한 햇빛을 받고 있었다 빛을 받은 몸뚱아리보다 몸뚱아리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를 설명하는데 알맞을 것 같은 생기가 없는 사나이 나태함을 넘어 삶 속에서 죽음의 자리를 튼 그의 모습이 맴돈다 날개 꺾인 새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새라고 하기에는 그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듯한 번데기 같은 모습이 '그'라고 부르기에 이질감을 주었다 그런 그가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외치던 모습이 그 때의 말이 지금 나의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날아보자꾸나' 평범한 말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어 죽음을 써내려가던 손을 멈추게 한다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라는 말을 외치고 멈춘 소설 속 인물은 내 옆에서 한 마디를 더 외친다 새로 하늘을 날았던 그 때처럼 너도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 백월14
• 2019-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