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의자에 앉아 책상을 향해 조는 그녀를 옆자리에서 서서 조용히 바라보며.

  • 작성자 隱朤
  • 작성일 2019-08-27
  • 조회수 353

은랑

 

검은 물결이 산들바람에 스친다
버들가지가 흩날리듯 머리카락이 날린다

한 올이 빠져 바람을 타고 나에게 이른다
코에 부딪히고 교실 바닥에서 나뒹군다

풍기는 샴푸 향이 코를 핥는다
교실은 다홍색으로 젖어버린다

답답한 코가 이성을 잃는다
익숙한 향에 눈앞이 어른거린다
심장이 가빠지고 볼이 달아오른다

 

몰래 들어왔기에 떠나야 했다.
하지만, 잠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놔두고 문을 열기 싫었다
복도가 시끄러워서 널 울리기 싫었다

실눈을 뜨는 촉촉한 눈가가
노을보다 환해서 낮보다 밝았다
입을 벌리는 그 속에서 하품이
하얀 수국보다 둥글게 피었다

기지개를 펼 때의 숨소리는
소라의 파도 소리보다 고요했다
그러나 뭐해,라는 축축한 목소리로
건드리는 질문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전교권에서 노는 우등생도 너란 과목엔
항상 감점을 받았기에 재시를 치기엔
늦을 것 같아 천천히 고민을 하다가
답안지에 서술형으로 입술을 갖다 댄다

隱朤
隱朤

추천 콘텐츠

가을의 무용

  -은랑 가을 바람에 기억이 또 바스락거린다 나는 저편에서 흐느적거렸다 알아낼 수 없는 이유로 쌀쌀해지는 계절에 맞서지 못했다   발 주변에 단풍이 지고 마음도 이리저리 휩쓸린다 아무도 없는 나무 아래에서 서글프게 울고 있는 나는 지주를 안고, 다시 껴안는다   바람에 가지들이 쓸쓸한 춤을 춘다 가지 사이로 섭섭한 소리도 난다 잎들은 바삭한 소리를, 가지는 추위를 모든 나무를 보는 나는 아픔을 부른다   가지에서 물감이 날아오른다 가을은 떠나가는 계절, 날아가는 계절 누구는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움직이는데 누군가는 여전히 묶인 채 흔들리기만 하였다

  • 隱朤
  • 2019-09-23
밉다는 말은 나한테 하는 말.__개고

-은랑   네가 밉다는 말은 나한테 하는 말 바람을 좋아했던 이에게 가버린 망아지 처음 느낀 바람과는 다른 차가움 실망한 나머지 갈 곳 없는 부끄럼 처음 불었던 바람과 사뭇 차가워진 바람에 놀라 식지 않는 볼을 감추려 꺼내든 밉다는 어리석은 말 그믐달 아래에는 모난 마음도 기운 채 주인 없는 바다에 떠다니는 익숙한 앙금, 실은 네가 밉다는 말은 내가 밉다는 말.

  • 隱朤
  • 2019-09-14
밉다는 말은 나한테 하는 말

은랑 네가 밉다는 말은 나한테 하는 말 처음 느낀 바람과는 다른 차가움 실망한 나머지 주인 없는 부끄러움 서성거리다 바람을 좋아했던 이에게 간 밉다는 그릇된 망아지 그 바람은 내가 불고 분 바람 처음 불었던 바람과 사뭇 달라진 차가워진 바람에 놀라 식지 않는 볼을 감추려 꺼내든 밉다는 어리석은 말   그믐달 아래에는 모단 마음도 같이 기운 채 주인 없는 바다에 누워있는 나는 이제야 천천히 꺼낸다,   내가 밉다는 말을.

  • 隱朤
  • 2019-09-05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권민경

    隱朤님 곧 다시 댓글 답니다. 이 시가 전의 시보다 좋다고 느껴집니다. 추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이에요. 다만 몇 가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교실은 다홍색으로 젖어버린다’란 표현이 있는데요, 색채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이 생략된, 추상적인 단어예요. 아이들이 흰 구름이라 표현할 때의 흰 구름은 어떤 구름일까요? 그건 관용적인 표현일 뿐이고, 구체적인 구름의 속성을 담고 있진 못해요. ‘다홍색으로 젖는다’는 사실 구체적인 표현이 아닌 거죠. ‘하얀 수국’의 경우, 수국의 색깔을 짚어준 것이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다만 이런 표현도 적은 편이 좋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겠지요. 꼭 여기 하얀 수국일 필요가 있나, 그냥 수국이면 안 되나, 하는 질문이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너’란 인물이, 그저 대상화된 인물로 그치지 않게, ‘너’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 말해줘도 좋겠네요. 샴푸 향기처럼 단편적이고 상투적인 이미지 외에도 ‘너’만이 갖고 있는 개성이 더 있을 듯해요. 마지막 연은 재미있었습니다. 한번 수정해 올려보시겠어요? 그럼 다시 만나요.

    • 2019-09-04 23:35:22
    권민경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