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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발표] 미디어 블랙홀

  • 작성자 가로밑줄
  • 작성일 2021-03-22
  • 조회수 283

아,

어두운 방 속
어두운 인간 하나

검은 전깃줄
끊어질듯한 그 선에
차가운 물을 잔뜩 끼얹는다

하나의 별과 같았던 반짝임은
차츰 투명색 웅덩이를 타고 번져갔다
투명한 하늘을 수놓는 별빛들
나의 우주

별 하나에
얼굴 모르는 악인의 핍박을

별 하나에
얼굴 모르는 연인의 이별을

별 하나에
얼굴 모르는 타인의 죽음을

역겹도록 싫증 나서
울분 섞인 토악질이 아깝지 않은
나만의 자그마한 우주

아,
가식 어린 별빛들이여

그 우주가
저 새까만 우울함까지
전부 하얗게 타오르고 또 타올라

이대로 미친 듯이 뒤얽힌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 채

나의 죽음이 애도되기를

가로밑줄

추천 콘텐츠

흔적

손이 큰 여자다훼손된 몸을 끌어안고 졸음을 견딘다 컵에는 지문이 묻는다 컵 속에는내 손가락을 해석하고 들끓어가는 어두운 유전자가 샘플처럼나는 하품을 한 뒤에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견딜 수가 없어 자라나는 손가락은 귀와 눈에 나뭇가지처럼 데롱데롱여자에게 일러둔다, 뿌리까지 뽑아야 해지독한 목감기로 붉게 부푼 초가을 속으로 도망간 노예처럼 기다란 팔을 집어넣고두루마리 휴지처럼 토해내버려, 쭈욱전부 컵에다가, 납득시켜버리라는 듯이 컵 속에는 내 더러운 지문을 해독하고 들끓어가는 어두운 유전자가 개미처럼알을 까놓지여자에게 변명한다. 그건 내 심장이야컵의 내용물을 마시고 마셔도 가시지 않는 갈증의 정체는 내 손가락이 입을 헤집어놓는 구역질의 (무엇을 토해내고 싶은건지 모를) 훼손된 몸을 끌어안은 여자의 커다란 손은 길고 둥근 등골을 쓰다듬는 종류의 일으킴회개는 심폐소생술아주 차가운 복통을 앓는다사라지기 전에, 컵을 내려놓는다

  • 가로밑줄
  • 2023-10-28
나쁜 말

악의가 있다입맞춤은 입을 씹어먹는 악취가 진동한다 길고 가느다란 입술 위에서 끝없이 길어지는 봄에는 풀들에게 부풀도록 설득하는 작업을 하는 어머니와초저녁의 낙엽이 굴러가는,걸어가다가 소실점으로 사라져버릴 친구와 나는 기한을 넘겨 반납할 수 없는 슬픔과 연체된 부끄러움으로죽일 것처럼 악의로 차있다사랑을 쥐고 버튼을 누르면 칼날이 튀어나오게 되어 있어 너는 말하고쥐면 터질 것 같은 비둘기들은 심장 역할을 하고손에는 손가락이 더 돋는다 네 목을 더 확실하게 잡을 수 있게뱀같은 숨을 느낄 수 있게그냥 닥치고 있어우리는 말할 수 없어

  • 가로밑줄
  • 2023-10-28
외모

치과의사는 화장을 가르쳐준다 그녀의 눈꺼풀의 움직임이 나를 훼손시킨다 우선 눈을 깊숙이 눌러 없애니 작은 고뇌에만 틀어박힌 시선은 어둠만 쭈욱 바라보다가 깜빡할 사이에 멀어버리고 거울 속 나는 그제서야 거울 바깥의 내게 붙잡힘 없이 마음 놓고 넘쳐나와 다정한 죽음을 준비한다 또 열이 나면 다정한 목소리는, 귀에다가 열을 잴 때에는 귀 뒷쪽을 재야지라며 온도계로 귀를 후비고 달팽이관에 이르러 바늘처럼 가늘어져 나선으로 굽어 전두염 속 눈알을 마주봐 (벌써 떫어진 농담처럼) 끝과 끝을 맞잡고 악수한다 빠져나올 때 이미 귀는 없어져 있었다 코는 먹었고 손수건으로 입을 문질러 지운 게 후회된다 켜진 가로등 아래 잠든 중고차 앞좌석에는 입냄새가 난다 뒷좌석에는 꿈벅꿈벅 졸음 짓는 큼직한 치과의사가 울상을 짓는다 어릴 때 등골이 오싹해지던 그 하얗고 가느다랗던 손은 입 대신 배꼽을 깊숙이 쑤신다 (뱃속에서 분실된 이빨 대신 아이를 꺼내는 모양이다) 자세히 보면 치과의사는제 입술끼리 맞물어 동성애자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혓바닥엔 꽉 물었던 어금니가 덩그러니 뽑혀 있다 윗니를 끄집어당기면문질러 지워진 입도 되돌아올까 싶어 친구에게 전화했지만 안 온다 (어떻게 만났어도 설득하지 못해 사라졌을거라면서) 입은 무릎처럼 굽지 않고 구부러진다 동성애자처럼 시간은 길고 어머니는 들러서 기지개를 펴준다 귀 눈 코 입 없이 달걀같아진 머리를 벽에 찌뿌려뜨려도 질기고 질긴 밤은 끊길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동성애자의 반대쪽 입이 토로한다 꼴뵈기 싫은 인간이야 끝내 입은 커다랗게 입을 삼키지만입이 없어도 나는 이빨을 뱉는다 그제서야 치과의사는 이쁘다고 입을 맞춰준다. 여전히 아이는 없다.

  • 가로밑줄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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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백규 시인

    다중 우주론 학생, 안녕하세요. 어두운 방과 미디어 환경을 우주로, 그리고 블랙홀이라 표현한 것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구절을 빌려온 것도 재미있었구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임에도 적절히 조절한 것 같습니다. 크게 손댈 부분은 없는 듯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D

    • 2021-03-27 23:42:41
    최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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