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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발표] 주인공

  • 작성자 가로밑줄
  • 작성일 2021-07-16
  • 조회수 167

제아무리 등장인물이 한 치 앞도 모를 현실에서 숨 쉬어도
무대의 배우는 스스로가 비극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알듯이
나 역시 그러한 걸까

혹은 나는
카타르시스를 죽인 소설에 박제된
우스꽝스러운 시체일지도 모른다

내가 남긴 흔적은 도치법으로 설명된다

단지 나를 보다 인상적으로 객관화하기 위해서라지만
나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세운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이름을 한 등장인물은 되어버린다
어릿광대가

그리고 그 어릿광대는
스스로 환상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갇힌 시인처럼
자신의 살덩이를 갖고 저글링을 한다
소년이 꾼 꿈의 메시지를 가지고 묘기를 부린다

그렇게
      수많은 나는
               화려히 장식되는
                              은유의 나열 속에서
                                                         불길함

                      그 은유를 깨뜨리고
            날아오르길 바라는
까마귀가 되어

    내가 흩뿌리는 복선들이
                                  단순한 맥거핀이 아닌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위한
          발판이자 계단이기를
바라면서

불빛 하나 없는 고요한
새까만 그 감옥 속

내가 언젠가 쓸 수필의 궤적은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비극일지
혹은 형편없는 희극일지 떠올리며

한심한 비극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문학가의 실루엣이 된다

가로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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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손이 큰 여자다훼손된 몸을 끌어안고 졸음을 견딘다 컵에는 지문이 묻는다 컵 속에는내 손가락을 해석하고 들끓어가는 어두운 유전자가 샘플처럼나는 하품을 한 뒤에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견딜 수가 없어 자라나는 손가락은 귀와 눈에 나뭇가지처럼 데롱데롱여자에게 일러둔다, 뿌리까지 뽑아야 해지독한 목감기로 붉게 부푼 초가을 속으로 도망간 노예처럼 기다란 팔을 집어넣고두루마리 휴지처럼 토해내버려, 쭈욱전부 컵에다가, 납득시켜버리라는 듯이 컵 속에는 내 더러운 지문을 해독하고 들끓어가는 어두운 유전자가 개미처럼알을 까놓지여자에게 변명한다. 그건 내 심장이야컵의 내용물을 마시고 마셔도 가시지 않는 갈증의 정체는 내 손가락이 입을 헤집어놓는 구역질의 (무엇을 토해내고 싶은건지 모를) 훼손된 몸을 끌어안은 여자의 커다란 손은 길고 둥근 등골을 쓰다듬는 종류의 일으킴회개는 심폐소생술아주 차가운 복통을 앓는다사라지기 전에, 컵을 내려놓는다

  • 가로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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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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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밑줄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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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주

    안녕하세요, 다중 우주론님. 시 잘 읽었습니다. 부지런히 쓰시는군요. 화자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뇌하고 있네요. 그러한 고뇌가 극적으로 전개되는 듯 합니다. “스스로가 비극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알”고 있거나 “카타르시스를 죽인 소설에 박제된 우스꽝스러운 시체”와 같이 표현되고 있군요. “얼어붙을 듯이 차가운 비극일지 혹은 형편없는 희극일지”와 같은 표현에서도 드러나듯 화자의 자의식이 비대한 자의식의 표현 외에 다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만 합니다. 화자를 “인상적으로 객관화”해야한다는 부담이 있다면 내려놓고 그저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인 “주인공”에 대해 쓰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주인공”에 대해 고뇌하기보다는 화자의 어떤 구체적인 순간들을 포착하는 편이 오히려 인상적일 수 있습니다.

    • 2021-07-27 18:35:50
    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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