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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

  • 작성자 명실
  • 작성일 2022-05-20
  • 조회수 334

술에 잔뜩 취해 벌게진 얼굴로 손을 휘젓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따위를 알 리가 없어요. 스테인리스강 소재의 경계선에서 나는 무력한 춤을 이어나갈 뿐입니다.
짓무른 듯이 찌그러져 우스운 몸짓으로 때때로 히스테릭한 비명을 내지르곤 합니다. 나의 육체는 힘을 잃었고 관절 따위는 으스러진 지 오래입니다. 탐미적인 육체에 대한 관심을 품던 시기도 있었으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뼛가루조차 남지 않게 되는 날에 도대체 어느 인간이 유효할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
직관으로 나열된 세계에서의 자신은 그저 포르말린 절임밖에 더 되는가? 따위의 잡념이 문득 들고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케즘을 읊기에는 이미 세계를 사랑해버린 지라 금세 관두었습니다. 사실 진리에 닿는 작업을 굳이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찾을 수 없었기에 포기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실체 없는 관념의 바다를 사유하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이러다 물결에 떠밀려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그만 좀 하자며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을 거닐다 보면 평온히 도로 위를 지나던 트럭이 궤도를 틀어 내게로 돌진하는 이미지가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저항 할 수 없는 섭리라는 것을 따라 픽 뭉개지는 상상을 합니다. 삶에 대한 의지가 없는가 하면 그건 아니에요. 나는 여태까지의 인생에서 그 누구보다도 살아감에 있어 열심이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워낼 수 없는 그을음이 자리하기에 앞으로도 언제나 전신주가 무너진다든가 하는 류의 망상을 안고 서투른 발자취를 남겨대겠지요.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생하여 끝나서는 멸하는 것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많은 부정 중 하나겠습니다. 막역을 그리워하며 막연히 허상을 뒤쫓고 만연한 이야기를 적고 또 적고 언제나 언제까지나. 허무의 이데아를 마음 깊이 그려대며 뭉뚱그려진 구심점을 향해.

명실
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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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어떤 풍경은 그을음으로 남는다 거뭇거뭇한 자국이 되어 살아있는 동안 미시적 혹은 거시적인 크기로 계속     뼈아프게 짓씹는다 새하얗게 내려앉는 설원의 온도를 눈이 소복이 쌓인 길가를 거닐었다 밑창이 닳은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어색한 모양새로 붙어있던 옷가지 따위를 던져버리고 그저 발을 옮겼다   곁에 있어서 괴로웠던가 헤져버린 감정을 빨아먹으며 우악스러운 몸짓으로 사랑했던가   추하게 굽은 날갯죽지에서 아마 마음이었던 것이 피부를 뚫고 뼈를 부수고 혈관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드디어 추락하는가 혹은 비상하는가 하늘이 무너지거나 대지가 뒤집힌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대로 삶에 박혀 멈춰버리는가 그렇다면 좋으려나     사실 나는 혼자 밥을 차릴 줄도 알고 병원에도 갈 줄 아는 사람이고 먹고 살기에 대해서 고민할 줄도 알고 방을 치우는 법도 알아 그런데도 내가 멍청하게 굴었던 건 아마….     맨몸으로 겨울의 밤을 관통하고 있자면 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쓸려나가고 다시 헤집고 쌓이고 결국 여기에는 아직도 눈이 내린다

  • 명실
  • 2022-08-23
푸념

손끝이 아려오는 날엔 문득 밤하늘의 성운이 떠오르곤 했다 눈이 멀 정도로 일렁이는 행성 번뜩이는 섬광에 마음을 빼앗기는 날들이 있었더랬지 실은 요새도 그렇게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나는 자신을 알 수 없다     베란다의 턱에 반쯤 몸을 걸치고 숨을 내쉬었다 3층 남짓한 높이에서 바라본 거리는 바쁘게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언제쯤 숨 가쁘게 살아갈 수 있는 건지 얕은 호흡으로도 버틸 수 있는 건지 아득한 내일을 또 그 속에서 사라지는 과거를 계속 계속 훑는다 손을 대지 않는다면 자취를 감출 것만 같았기에 그대로 굳어 사라질 것만 같았기에   그러니까   결국 어서 목을 축이고 싶을 뿐이다     그제 사 둔 콜라에는 금세 날파리가 끼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둔 옷가지에서는 쿰쿰한 체취가 감돌았다 돌아오는 길목에는 날 서린 돌풍이 들이닥쳤다 남겨두었던 음식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은 당연하지 않게 되었고 꾹꾹 눌러쓴 편지에는 애정을 담아 본 적이 없었다 널어둔 빨래에는 흙먼지가 붙어 있었다   아 새벽녘의 잔상이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침이여 서럽도록 내려앉은 시린 안개여 나는 축축하게 스미는 감각을 꽤 좋아했었단다     어디에 서 있었더라 어딜 지나고 있었더라 어느 곳에 닿으려 했었더라   단 하나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일생이여 부디 계속되기를 바란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고 짖궂은 표정을 띄고 변치 않기를 기도하겠다  

  • 명실
  • 2022-08-17
썸머

눈꺼풀을 내리깔면 싱그런 잎사귀의 잔상 붉은 실핏줄 사이로 초록의 섬광이 살포시 또는 고요하게 또는 강렬히 잔가지 사이로 삶을 탐하며 목을 꺾어 바라본 태양 그것은 붉음이었던가 그것은 희망이었던가 아마 다시는 맞닿을 수 없을 테지   솔직했다면 무언가 달랐을까요. 나는 아직도 그해 여름, 비를 맞으며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던 날이 그립습니다. 세찬 비를 휘저어 고성으로 깔깔대던 풍경이 떠오릅니다. 땀방울과 빗물이 한데 섞여 끈적하게 이마를 타고 흐르던 감각. 나는 그때 가장 살아있었습니다. 아마, 혹은 분명 나의 등 가운데 기다란 선을 따라 칼로 흠을 내면, 그래서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바싹 마른 폐어가 한 마리 있을 겁니다. 하얗게 센 동공을 데굴데굴 굴리며 우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강물에 몸을 누이기만을 고대하며 억겁의 시간동안 굳어버린 채, 그렇게....   목구멍 아래의 어딘가 피상을 헤집고 떨어지는 곳 아마도 가슴께 즈음 더러운 냄새가 나는 곳 누군가를 깊숙이 묻어두는 곳 떠나간 이들의 묘지 마음이 고이는 자리 나는 여전히 여기 산다 잔해를 그득히 쌓아놓고 구질구질하게 그렇게 산다 잎들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 빛 그림자 진 아스팔트 도로 위 빛의 일면이 뜨겁게 타오른다 새파란 색으로 영영 날아간다

  • 명실
  •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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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주

    안녕하세요, 명실님. 시 잘 읽었어요. “술에 잔뜩 취”한 화자의 독백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감을 줍니다. 일견 장황해보이는 화자의 독백을 통해 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리송합니다. 이를테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직관으로 나열된 세계” “실체 없는 관념의 바다를 사유하는 일” “저항할 수 없는 섭리” “허무의 이데아”와 같은 표현들은 보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하는 게 좋겠습니다.

    • 2022-06-06 19:14:39
    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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