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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한줄백일장 심사평(이은선 소설가)

  • 작성자 웹관리자
  • 작성일 2011-05-29
  • 조회수 317

 

5월의 한줄백일장(주제 : 립스틱) 심사평

 

이은선(소설가)

※ 인터넷 라디오 〈문장의 소리〉 작가

 

 

dawn : 엄마의 립스틱이 닳지를 않는다. 닳지를 않는다.

글길나래 : 남자는 붉어지지 말란 법 있습니까?

날카로운펜 : 어머니의 터진 입술을 가리는 아름다운 '반창고'

하늘망울 : 그러니까, 초생달이 붉은 것도 다 이 때문이라니까.

각설탕 : 선물해보기 전에는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몰랐는데 말이야

 

많이들 기다리셨지요? 이래저래 고민이 좀 많았습니다. 립스틱이라…. 아무래도 좀 사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야 할 것 같아요. 제가 딱 여러분만한 나이였을 때, 우리 엄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알고 있었는데, 모르겠는 것 같기도 하고, 굳이 더 깊이 알려고 들지 않았어요. 그냥 엄마는 늘 누워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는 아줌마들이 사온 쌕쌕이나 코코팜이 너무 좋고, 엄마가 쉽게 사주지 않던 간식들이 집에 쌓여 있어 행복하다고만 여기던 때였어요. 어쩌면 그런 생각들로 제 마음을 감추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세 번의 대수술 끝에 더 이상은 수술도 어렵다는 선고를 받은 날은 하필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었어요. 또 입원을 하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무작정 거리를 걷다가 화장품 상점 안으로 들어갔어요. 엄마 병문안을 왔던 친척들이 주고 간 용돈이 주머니에 들어 있었어요. 고운 분과 선홍색 립스틱 하나를 샀어요. 언젠가는 엄마가 일어나서 꼭 이걸 바를 때가 있을 테니까. 엄마가 다시 립스틱 바르고 외출할 날이 올 테니까 말이에요. 나는 립스틱에 그렇게 많은 색이 있는지 몰랐어요. 우리 엄마는 늘 선홍색 한 가지만 발랐으니까요. 화장품 가게 아줌마가 오천원이나 깎아주셔서 엄청 기분이 좋아졌어요. 마치 엄마가 멀쩡하게 되살아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니까요! 곱게 포장한 화장품들을 가지고 기차를 탔어요. 엄마는 큰 도시의 병원에 입원하셨거든요. 포장지는 어쩌면 그렇게도 화려하던지. 나는 엄마 병원으로 가는 게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생일파티에 초대 받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해야만, 그 순간을 견딜 수 있었으니까요.

병원에 도착하면 엄마에게 분을 발라주고, 립스틱을 칠해 주리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이미 엄마의 얼굴엔 산소호흡기와 여러 가지 호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나는 그걸 꺼내놓지도 못했어요. 까맣게 타들어간 저 입술에 립스틱 좀 발라주겠다는 게 뭐가 문제인지 몰라 그냥 울기만 했어요. 그때 나는 기적이란 빛이 존재한다면, 립스틱을 포장한 금박 색종이의 빛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빛나지도 않을 거면서,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대체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고 속으로 세상의 모든 신을, 신들의 은총을 원망했어요. 립스틱은 한동안 내내 제 가방 속에 들어 있었어요.

그로부터 십 오년이 지났습니다. 신은 때로 원망하면, 온 마음을 다해 원망할 때 소원을 들어주기도 하나 봐요. 엄마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립스틱은 몇 개째 일까… 가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지요?

여러분들의 한줄 댓글 너무 잘 보았습니다. 역시 우리 글틴의 상상력은 어디로 튈지 모르겠더라고요. 어쩌면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까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이미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다만 한 가지, 억지로 꾸미려는 듯한 문장은 보는 사람의 눈에도 쉽게 읽혀지지가 않아요. 최선을 다해 멋진 단어들을 사용하려는 마음은 글을 쓰는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단어들로 애써서 꾸몄다는 인상을 주는 문장들은 읽기가 조금 힘이 들어요. 많이 꾸미려 들지 않아도 단 한 줄로 내 머리를 스쳐가는 어떤 것.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자연스러움. 이러한 것들이 모여 우리가 읽기에 좋은 문장들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러분들은 이미 훌륭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보다 자연스럽고 진실 된 마음을 스스럼없이 표현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감히 제안해 봅니다.

 

여러분들의 소중한 글을 아껴가며 잘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 오늘 립스틱 한 번 진하게 발라볼까요? 옆에 있는 사람 볼에 입술도장을 살짝 찍어줘도 좋을 것 같은데요….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각자 개성 있는 색의 립스틱을 바르고 만나는 것은 어떨까요?

립스틱 색깔처럼 화려하고 환한 꽃이 핀 여름의 초입이네요. 더 멋지고, 건강해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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