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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문학 작품 소개 - 박지리 작가의 '번외'

  • 작성자 우주디
  • 작성일 2021-08-09
  • 조회수 539

 


추천 도서 - 번외 ( 박지리 작가. 사계절 출판사)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된 도서 '번외'는 제가 두 번째로 읽은 박지리 작가의 소설입니다. 제가 접했던 박지리 작가의 첫 번째 작품은 세븐틴, 세븐틴이라는 단편소설이었는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저는 위 작품을 읽고 세계의 확장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세븐틴, 세븐틴 역시 박지리 작가 특유의 염세적 분위기가 촘촘한 서사를 따라 조용하면서도 파격적으로 흘러가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작품 '번외' 역시 박지리 작가의 단편 소설과 상당히 흡사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소설이란 생각이 드네요. 앞서 박지리 작가의 장편 소설을 세 권 정도 읽은 바가 있는데, 박지리 작가의 등단작인 '합체'를 제외하곤 전부 언급했던 분위기와 형상을 가진 소설이었습니다. (저는 박지리 작가의 상당한 팬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를 가장 먼저 떠올리라고 하면, 박지리 작가의 책이 주마등처럼 스치거든요. ) 번외는 제가 읽은 작가의 여러 작품 중,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과 통찰력. 그리고 박지리 작가만이 쓸 수 있는 특유의 씁쓸한 문체가 절정을 찍은 소설이 아닌가, 싶네요. 단언컨대 '번외'는 그 자체로 고유명사와도 같은 문학이 아닌가, 싶습니다.


번외에서 엿볼 수 있는 서사는 '애도 서사'로, 죽은 뒤에 남겨진 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교생 총기 난사 사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이자, 사건의 주범과 친분이 있었던 학생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사건 추모 1주기의 다음 날, 주인공이 학교 밖으로 벗어나 삶의 테두리를 배회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서사 자체에는 크게 '사건' 이랄 것이나, 기승전결이 정교하게 갖춰져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만,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문학의 형식적인 틀을 벗어나, 박지리 작가만의 사고 등이 유연히 묻어나 있어 읽는 재미가 톡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장면들 역시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왔는데, 예시로 소설의 도입부를 조금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피노자의 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이제 저렇게 훌륭한 인간은 다 죽어 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 년 후 윤리 교과서에는 2천 년대 이후의 인간들은 전멸, 가련한 마하트마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물레를 돌리고 있으려나.


하지만 말이야, 알고 보면 스피노자도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한 번쯤은 도대체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 죽어 버릴까 하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간디도 너무 힘이 드는 날엔 물레에서 뽑은 실로 제국 주의자들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지도 모르고.


모든 걸 이런 식으로 생각해 버리면 지구는 한 알의 거대한 푸른색 수면제가 되어 버린다.


하품이 나네.'


*


주인공은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합니다. 단순 '죽음에 관한 고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주인공이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과 이유를 만들어줌으로써, 죽음에 관한 사유들을 뒷받침해 주고 소설의 애도 서사가 형상화됩니다. 남겨진 사람이 죽어버린 이들과, 사건의 가해자를 떠올리며 또 다른 제3의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해 준 것도 같네요. 학교 밖을 벗어나, 풍선을 잡기 위해 허공에 손을 뻗다가 우연히 택시를 잡아버린 주인공, 택시를 타고 동물원에 가는 주인공. 곧잘 집에 가지 않고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눈앞에 보이는 교회 번호로 전화를 걸어 신의 존재를 묻는 주인공. 이른 새벽 무료 급식소로 향하는 주인공.. 등등의 상황 전개를 보면 딱히 핵심 '갈등 관계' 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소설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인 뚜렷이 드러나는 외면적 갈등을 제외하고, 기존 문학의 전개 형식과 틀을 벗어나 주인공의 독백. 묘사로 이루어진 서사는 '번외'의 의미를 더해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결말에 관하여)


소설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나는데요, 주인공의 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상황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이는 작가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작가는 시대에 따라 독자로 하여금 가지각색의 결말에 관한 견해, 해석이 나오길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애도 서사를 다루는 건 특히 조심해야 하는 일인데, 너무 감추지도, 또 너무 드러내지도 말아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다간 2차적인 가해 요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박지리 작가의 '번외'는 삶 자체가 번외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서사,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특정 사건에 중점을 두기 보다 작가 개인의 시선과 고찰로 하여금 풀어낸 작품입니다. 기억해야 하는 명분을 가진 '작가' 로써 적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추모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특정한 '참사' 를 기억하며 추모하는 소설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개인적이고도 포괄적인. 참사의 범주를 넓힘으로써 시대가 흘러도 만인의 애도 서사가 될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번외)


글을 쓴다는 건, 기억한다는 게 아닐까요?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죽어버린 생을 애도할 순 없겠지만. 글을 쓰는 우리는 더욱더 기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모퉁이를 들여다보고, 한 번 더 생각하기. 이해하려는 힘, 그것이 글쓰기의 원천이자 소설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평론에 관한 부분에 있어선 여전히 자신이 없지만, 너무도 좋은 작품이 잘 알려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실은 저만 알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했습니다. 아쉬운 감이 있는 문학 작품 소개 글이지만, 모쪼록 봐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입추가 지나면서 무더웠던 날씨도 서서히 꺾이고 있는데.. 남은 여름의 열기에는 불만보단 소중함을 갖는다면 어떨까요? 저는 제 여름의 끝자락이자, 10대의 마지막 여름을 서서히 놓아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접히는 모퉁이 끝에는, 늘 언제나. 문학이 함께하는 것도 같네요.


여러분의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이 안온했으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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