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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고 아름다운 - 23년 글틴캠프 후기

  • 작성일 2024-02-16
  • 조회수 83

그러니까... 나는 늘 무언가를 두고 오는 사람이다. 꼭 물건이 아니더라도, 줄곧 지니고 있던 나의 것을 두고 오게 되는 사람.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랬다. 지난 가을에도. 정말 사랑하는 이와 국내 여행을 떠났고 우리가 단풍길 아래를 걷는 동안 깨달았다. 나는 이제 더는 그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마치 허수경 시인의 ‘이국의 호텔’ 속 구절처럼. 사랑이라는 조금 슬픈 마음은 호텔 방 서랍 안에 숨겨두고 왔다. 그리고 여름 한낮의 문학 캠프에서 울었던 기억, 합평을 마치고 한없이 초라해지는 나를 느끼다 그만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던. 나는 연수원 복도에 나의 체면을 두고 왔다. 또 무엇이 있을까? 분명 즐거웠지만 아끼는 머리핀을 두고 온 수학여행이라거나 별 탈 없이 다녀와서는 건강을 두고 왔는지 한참 아팠던 문학 주간, 진은영 시인과의 대담.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건 나의 일부를 마모시켜 떨어진 덩어리를 낯선 곳에 놔두어야 할 정도로 어딘가에 열심히인 구석이 있다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자꾸만 나를 놓아주어야 하는 감각에 휩싸여야 하는.

이번에는 어떤 걸 두고 오게 될까.

22년도 글틴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순천으로 가는 버스에서 했던 생각이었다. 나는 23년도를 포함하여 총 4번의 글틴 캠프에 참가한 적 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정말 2박 3일 ‘캠프’의 형태로 개최된 것은 22년도와 23년도 캠프뿐이었는데, 22년의 캠프는 무척 즐거웠다. 행복했고, 너무 행복해서 믿을 수가 없었고, 캠프의 마지막 날 아침 함께 밤을 지새운 친구들과 눈을 보기 위해 바다를 보러 갔을 때의 경험. 나의 아름다운 신인류와 보냈던 시간, 내가 진심으로 응원하는 E와 직접 만나볼 수 있었던 시간. 두고 온 건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아름다운 기억을 들고 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무너질 뻔 했던 23년의 나를 스스로 구할 수 있었다. 눈 내리는 해변가의 기억을 몇 번이고 되감으며 꿈을 꾸기도 했고. 그걸로 시를 쓰기도 했고 - 그것이 올해 캠프에서 선보인 '해변의 장례식'의 골조가 된 기억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작년의 글틴 캠프는 내 생애 유일하게 두고 온 것이 없는 여행이었고. 올해도 과연 그럴까, 하며 광주로 향했다.

많은 생각을 안고서 광주 유스퀘어에서 내렸을 때, 친절한 안내 덕에 어렵지 않게 캠프 스탭분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문학 주간 때 신세 많이 졌던 슬기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돌아가는 시간 때문에 미라클뮤지엄 스태프 분들께 이것저것 여쭈어 보았는데 상냥하게 답해주셔서 정말이지 감사드렸다.

유스퀘어 합류 인원은 기차역 합류 인원보다 늦게 모였으므로 연수원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캠프와 시상식 현수막이 꽤 귀엽다는 생각과 함께 홀에 들어섰고, 작년 캠프에 정말이지 많은 도움을 받은 경란님께서 나를 기억해주시고 반갑게 인사 나누어 주셨다. 물론 입장할 때도 도와주셨고. 경란님은 언제 뵈어도 감사한 분이라, 참 멋진 어른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참가자 수가 많아 하나의 조당 10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고, 언니 두 명에 동생 한 명이 있었던 작년 캠프와는 정말로 달라 도착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작년 캠프에서 두 언니를 만나고 이번에는 내가 연장자로서 좋은 언니가 되어야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언니였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조 조장님을 비롯한 남자 부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했고, J와 D -나는 D가 정말로 나의 동갑인 줄 알았다. 당차고 또렷하게 하고 싶은 말 하는 것이 멋있었거든.-를 비롯한 조원들이 이것저것 열심히 챙겨주는 덕에 첫째 날 레크레이션에서 우리 조가 상품을 가져갈 수 있었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나는 우리 조가 정말이지 좋았고, 내가 운이 참 좋았구나 싶었고, 그러한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즐거운 기억은 참 많았지만, 내가 '가져온 것' 중 가장 아끼는 세 가지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 번째는 촌극. 작년에 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듣고 큰 충격을 받고,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이게 되는구나', 싶었고 조 1등을 하는 순간 '정말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년 촌극을 이끌어준 언니들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었고, 결과적으로는 조원들이 잘 받아준 덕분에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었다. 사실 촌극이 없었더라면 조원들이랑 이렇게까지 가까워지지는 못했을 것만 같다. 대본 짜는 틀에 큰 도움을 주었던 S에게 무엇보다 고맙고, 흥부와 놀부의 애드리브는 떠올릴 때마다 놀라운 것 같다. 우린 정말 그 부분에 대하여 대본을 짜지 않았고 (흥부의 애드리브) 대충 이런 식으로 때웠으므로.

두 번째로는 시상식. 사실 여기에 대해서는 생각은 참 많은데 할 말은 별로 없다. 처음엔 기쁘면서도 이 기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는 평론을 쓰지 못할 것 같다. 그게 이유였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두려운 거다. 도망치고 싶은데... 그래도 지난 반 년간 김태선 평론가님께 들었던 좋은 말이나 이소 평론가님이 해주셨던 말, 그리고 시상식에서 받았던 축하의 말들을 떠올리면 여기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망치지 말자. 도망치지 말자. 중얼거리면서.

시상식에 가지 않고 상을 택배로 받았다면 아마 나는 평생 평론이라는 장르를 회피하면서 살았을 것만 같다. 엄마가 녹화한 수상 소감을 다시 들어보니 정말 형편 없는데, 형편 없는 표현일 뿐 정말이지 내 진심인 테라 부끄럽진 않다.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시던 가장 앞 줄 문학 광장 담당자분들 그리고 이기호 소설가님을 기억한다. 그 끄덕거림으로 나는 아마 여기에 존재할 수 있을 테다.

세 번째로는 시인들과의 만남. 작년 캠프에서 김선오 시인님과 야식 먹으며 여러 이야기 나누었던 바, 올해는 처음 뵙는 그리고 내 평생의 동경이자 사랑인 김리윤 시인님과 여러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김태선 평론가님이 신경 써주신 덕분에 (ㅋㅋ) 싸인이나 팬심 표출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리윤 시인님은 합평 때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잘 작동하는 시를 쓰도록 여러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게 정말로 잘 세공된 '유리' 같아서 좋았다. 중간에 경란님이 오셔서 내가 제발 리윤 시인님 조에 가게 빌었다는 말도 전해주시고 가셨는데, 신경 써주신 도예님과 경란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내 삶은 김리윤 시인의 '글라스 하우스'를 읽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으니까. 나는 하필 합평의 마지막 순서였으므로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아름다우면서도 실속 있는! 감상 나누어 준 G님과 이메일로 이야기 보내주신 시인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없겠지만, 내년부터는 합평을 이틀에 나누어서 해도 좋을 것 같다.

24년의 나 또한 여러 번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빛의 도시에서 한가득 끌어안고 온, 빛을 닮은 그런 기억들을 껴안으며 나는 살아갈 것만 같다. 그러므로 2박 3일과 그 기간을 위해 노력해주신 문학광장 담당자님들, 미라클뮤지엄 관계자분들 (특히 경란님 정말이지 감사드렸습니다 _ _ ♡), 그리고 리윤 시인님과 합평 조, 4조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끝으로 내가 무한히 마음을 주고픈 4조 그리고 몇몇의 친구들과 함께 밤 새며 썼던 시를 이곳에 올리려고 한다. 우리는 2일 차에서 3일 차로 넘어가는 날 밤 자체 백일장을 열었는데, 운문 분야 단독이었고 시제는 '어두운 창고 속 해골을 이미지로' 였다. 나는 역시 사랑에 대해 썼고 합평회에서 선보였던 시에 묻어 있던, 그리고 내가 줄곧 고민했던 '그 문제'를 부수고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정말로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내가 완전히 무너져 나의 잔해들을 그곳에 두고오지 않도록 마음 보내주던 조원들과의 기억이 좋아서. 그 기억이 스며든 이 시를 가끔 꺼내보곤 한다.

언젠가 우리 문단에서, 그게 아니더라도 꼭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메리 고 라운드

얇은 이불 뒤집어쓴 채 여름 한낮으로 스며든다 늙은 선풍기의 고개, 자꾸만 아래로 향하다 달달거린다 조금도 다가오지 않는 햇볕에 늘어지는 그림자를 받아 마신다 점점 단단해지는 창틀의 그림자를

당신을 위한 수식어를 고민하다 바닥에 녹아든다 마룻바닥마다 미완성 하트 기호가 달라붙는다 이건 모두 당신의 방향으로 띄워 올리다 실패한 것이고

빛이 침묵하는 방, 그곳에서 침몰하는 나, 창가에 누워 파도처럼 여행을 떠난다 매미의 울음 자장가 또는 장송곡 삼아서 끝도 없이 멀어진다 세상의 귀퉁이로

속눈썹으로 물이 들이닥치는 시간, 난파선에서 깨어난다 입에서 헤엄치던 비밀은 물거품처럼 새어나오고 손끝이 투명해진다 지문처럼 새겨져 있던 불온함은 은밀해지는 중, 이곳에서라면 당신을 향한 수식어가 성립될 수 있겠어

무지개 비늘을 달고 난파선을 건너가는 물고기 두 마리를 본다 한 마리를 따라 다른 한 마리가 따라가고 있다 그것이 수컷인지 암컷인지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바다로 스며드는 햇볕, 한 줌 빛이 물고기들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문득 물고기가 된 당신을 생각하다가 적당한 수식어를 골라내본다 망설이는 사이 입술로부터 눈물처럼 흘러가버린다 나는 조금 더 투명해지며 뼈대들 하나 둘 드러난다 갈비뼈 하나를 뽑아버린다 당신에게

심장을 내어주고 싶어서

마음을 움켜쥐는 순간 다시 방이다 바다에서 헤매다 얻은 한 방울의 물이 눈에서 굴러떨어진다 사랑을 담아, 그런 말을 쓰고 싶었던 내가 빛 들지 않는 방에 누워 있다 아직은 모서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