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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캠프 후기

  • 작성일 2024-02-22
  • 조회수 46

새해를 맞고 푸른 용들이 우릴 지켜줄 거라 설렘에 가득 차 있던 날들이었다. 올겨울 유난히도 많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묵묵히 시간을 흘려보내던 날들이었다.

글쟁이들은 마음속에 호수를 품고 산다던가. 그리하여 굴러가는 돌멩이 하나에도,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려 자신을 쏟아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분명 나는 이 커다란 세상에서 그저 미생물 하나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내 머리와 마음속으로 펼쳤던 세계는 그 어떤 우주보다도 크고 어떤 심연보다도 깊었다.

상상하길 좋아했던. 작은 소녀.

그랬던 나는 어느덧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나무의 생을 되짚어 보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컵 안에 고여있는 물을 안타까워하는,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홀로 끄적거린 글귀들을 모아 한 편의 시를 쓰기도 하고, 매일 한 줄씩 적던 일기를 되짚으며 수필을 쓰기도 했다. 어느 글쟁이의 삶을 동경하며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글을 내려놓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이 더 이상 재밌지를 않고 의무적으로 써내린 글들은 나에게조차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이게 바로 슬럼프라는 것일까. 그렇게 글을 멀리하다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누군가를 위해 나는 힘을 쓰고자 했다. 나는 글을 멈췄지만, 그 누군가의 글은 생동적이고 나를 고양시켰으니, 나는 그 사람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글틴을 알게 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소년, 소녀 글쟁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글을 풀어 놓을 수 있는 곳. 그곳은 매우 흥미롭고, 이상한 전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찾은 사이트를 노트 한구석에 적어두었다. 언젠가 다시 글을 쓰게 된다면 그곳은 이곳이 되리라 마음먹으며.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왔다.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원래 사람은 딴짓을 할 때면 천재적인 재능과 아이디어가 반짝이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글짓기를 다시 시작했다. 슬럼프가 왔었다는 것조차도 잊은 채 말이다. 그렇게 글을 적다 보니 내 노트는 가득 채워졌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어느 여름날 적어둔 '글틴' 이라는 글자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거다'

나는 딴짓하는 데는 어마 무시한 추진력과 집중력을 가진 이었기에 그 즉시 사이트를 가입하고 첫 글을 게시했다. 그 첫 글은 내가 상당히 애정 하는, 8살 어린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썼던 일기를 보고 쓴 시였다. 그 첫 글을 시작으로 나는 여러 편의 글을 담았고, 그중에는 부끄럽지만 장원을 받게 된 글도 있었다. (후술하겠지만 나는 이 글을 지울까 백 번도 넘게 고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글을 사랑하고 글틴을 즐기고 있을 무렵 '글틴캠프'에 대한 공지 사항이 올라왔다. 나는 낯도 많이 가리고, 집을 사랑하는 극 내향형 인간이지만 그때만큼은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즉시 신청서를 작성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나갈 때마다 손끝까지 심장이 뛰는 기분이었다. 처음 놀이공원에 가보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신청서를 내고... 나는 그때의 흥분을 깡그리 잊은 채 신청했다는 사실, 아니 캠프가 열린다는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참가 안내 연락이 오게 된 것이다. 그때 얼마나 당황했던지. 처음에는 스팸인 줄로 알았지만, 뒤늦게 신청 사실을 깨닫고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2박 3일. 광주. 나에겐 이 모든 게 설렘 그 자체였다. 나는 설렘이 과도해지면 배가 아프고 심장이 아리는 이상 증세를 보이는데, 연수원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몇 번이나 아린 심장을 부여잡았는지 모르겠다.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글에 대해 떠든다는 게 글쟁이(를 동경하는 일개 사람)에게는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렇게 나와, 모두의 글틴캠프는 시작되었다. 나는 그 캠프 내내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기 때문에, 관심사가 같은 또래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것을 동경 내지 상상만 해오며 살았는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니 이게 꿈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취미로 끄적이기나 하는 나와는 다르게 그곳에 모인 이들은 글을 업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들에 잠깐은 내가 너무 나약하고 미련해 보였지만, 나 또한 글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것은, 새벽에 있었던 야매 합평회 및 백일장이었다. 같은 조원들과 타 조원들 몇 명이 모여 함께 글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조언을 주고받으면서 글을 짓는 그 시간이, 나는 너무도 황홀했다. 야심한 밤을 넘어 동이 틀 때까지 지속된 그 대화는 나로 하여금 피로를 잊게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내 안의 무언가가 깨지고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그 충격은 내게 고도의 행복감으로 다가왔다. 그날 그 시간에 존재함이 감사해질 정도로.

그리고 내 머릿속에 아직도 지울 수 없는 것은... 문장청소년문학상 시상이었다. 내가 쓴 글이 수상을 해버린 것이다. 처음 관련 메일을 받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글은 퇴고도 거치지 않은, 그저 감성에 젖어 끄적인 일기들을 합쳐둔 이상한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을 올리고 나서 지울까 말까를 백 번도 넘게 고민했다. 감사하게도 월장원을 받았지만, 그 후로도 나는 계속 삭제 버튼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매우 부끄러운, 내 감정의 날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글만 보면 발가벗겨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상까지 받아버렸으니 이제는 결코 돌아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별개로 나는 내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와닿았다는 것이 매우 기뻤다. 나는 모든 글은 화자가 글을 쓸 당시의 감정과 인상만이 담겨야 하고, 그것을 화자가 읽음으로써 그 감정에 닿을 수 있다면 그 글은 성공한 글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글을 보며 누군가 자신이 사랑을 할 때에 자신을 추억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너무 감사한 경험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그 상을 주신 분들과 글을 읽어준 누군가가 사랑에 빠졌고, 사랑을 앓았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행복의 극치를 경험한 나는 더욱더 성장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도 이미 겪었고, 글을 쓰는 '내'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 캠프에 온 것이 내 인생의 어떠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 감히 얘기한다.

글쟁이는 누구나 마음속에 호수를 품고 있다. 나는 이번 2박 3일의 시간이, 경험이, 감정이 그 호수 가운데 던져진 조약돌이라 생각한다. 조약돌은 던져진 그 순간부터 호수의 표면을 진동시키고, 호수 깊은 곳에 가라앉아 침묵한다. 호수는 그 조약돌이 던지는 이의 손을 떠난 그 순간부터 이 울림을 간절히 염원했는지도 모른다. 작은 낙엽에도 떨리는 호수의 표면이 진동하고 파편을 튀기는 그때에 글쟁이는 감명을 받고 다시 태어난다.

마음속 호수에 조약돌 하나 둘

요동치고 가라앉아 침묵하는 그때에

나는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