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농무
- 작성일 200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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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후무(入試後舞)
종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은행나무에 플랭카드가 매어달린 수능시험장
구경꾼 얼씬도 않는 텅 빈 운동장
나는 어둠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고기집에 몰려 친구들과 함께 고길 먹는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했지만
쉬어야 한다는 말을 앞장 세워 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공부해야 한다는 소리들뿐
엄마들은 입시학원 문에 붙어 서서
철없이 애들을 열등생 만드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재수생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특차입학생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시험점수에 얽매여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부모님 통장에도 여의치 않는 공부 따위야
아예 저 멀리에 던져 두고
번화가를 거쳐 집 앞에 와있을 때
나는 점점 신명이 난다
두 팔 쭉 뻗고 만세를 외칠거나
뜀박질을 하며 엄마를 외칠거나.
(원문)
농무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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