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평가자 이성수(경기 고양시 저동중학교 교사 qhasns@naver.com)

문학에 관심을 가진 여러 학생들의 좋은 작품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황진이의 한시부터 릴케의 시까지 다양한 시인들의 작품들을 기발하고도 신선한 상상력으로 새롭게 만들어보셨더군요.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소중하고 좋은 작품들이었지만, 그래도 더 잘되었다하고 격려하고 칭찬해야 할 작품들을 고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심사를 해 보았습니다.

심사를 하는 기준은 세 가지 정도로 정해보았습니다.

1. 패러디 대상이 된 원작 시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었는가?

- 패러디가 아무리 원작에 대한 재해석과 비틀음에 맛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하기 위해서는 원작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작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떤 식으로 재창조할 것인가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기준으로는 패러디한 시가 원작시가 가지고 있는 느낌과 감수성을 제대로 되살리고 있는가로 정했습니다.

2. 자신의 고민을 담고 있는가?

- 패러디는 원작을 자기 마음대로 이리저리 꼬는 말장난이 아닙니다. 패러디가 좀더 문학적인 의미를 담기 위해서는 패러디의 시도하는 사람 자신만의 고민이 새롭게 들어가야 합니다. 따라서, 패러디를 하면서도 새롭게 쓰여진 패러디 시의 내용이 응모자 여러분들의 고민과 관심을 잘 반영하고 있는가를 두 번째 평가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3. 시의 표현과 구성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

- 패러디 자체에 치중하다보면, 원작을 바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패러디를 한 새로운 창작물 자체의 내적인 흐름과 구성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예를 들자면, 시 작품 하나의 시간적 구성이 여름 - 겨울을 마구 넘나든다거나 공간적 배경이 한 작품 안에서도 일치하지 않는 것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들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는가를 세 번째 평가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최우수작

- 루시페린의 입시 삼부작

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가난한 사랑 노래(신경림), 빈 집(기형도)

루시페린님의 패러디 시는 ‘입시’를 늘 걱정해야만 하는 우리나라 중, 고등학생들의 삶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입시’라는 문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문제를 시로 풀어낼 때에는 흔히 관념적으로 흐르기 쉬운데, 루시페린 님은 시험을 보면서 망설였던 경험(빈 집 패러디)이나, 자율학습 시간 중에 문득 화장실에 갔던 순간들(저문 강에 삽을 씻고 패러디)을 아주 선명하게 형상화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루시페린 님의 시를 읽으면, 독자 자신이 시험을 보고 있는 듯,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듯 생생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흔히 말하는 형상화가 잘 된 패러디 시들을 썼습니다.

우수작

- 우주인의 ‘성적표를 본 순간’(이승훈의 ‘너를 본 순간’ 패러디 작품)

- 선율의 ‘고달픈 고 3의 노래’(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 패러디 작품)

- 뭐가의 ‘해바라기의 소거’(함형수의 ‘해바라기의 비명’ 패러디 작품)

- nature의 ‘한단몽’(이형기의 ‘낙화’ 패러디 작품)

특별상

- 팬텀의 패러디 세 편(황진이의 한시 패러디)

요즘 청소년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우리의 고전 작품을, 그것도 한시를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것 자체로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황진이의 시 세계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을 만나게 되어 무척 놀라웠습니다. 다만, 팬텀 님은 ‘패러디’라는 것을 ‘문자, 어구 바꾸기’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듯 해서 아쉽습니다. 패러디를 해서 고쳐쓴 시가 나름대로의 내적인 논리와 시적인 흐름을 갖출 수 있도록 좀더 세심하게 살펴보신다면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