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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에게 선물 받은 감미로운 여덟 곡-<악기들의 도서관>

  • 작성일 2009-07-27
  • 조회수 245

김중혁에게 선물 받은 감미로운 여덟 곡

 

 

   김중혁이라는 소설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책을 읽고 난 후, 남다른 발상이 신선했고, 독특한 문장력도 부러웠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남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소재들을 끈질지게 붙잡고 글을 썼다는 것, 어려운 작업이었을 텐데도 맛있게 풀어나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문학가의 길을 걷고 싶다는 꿈을 가진 나로서는 이 책의 특징들이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

  

   여덟 개의 단편 소설에는 재미있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주인공에게는 음악으로 대표되는 소리가 존재한다. 그 소리들은 마치 작은 구슬들을 오목조목 모아 놓은 듯 감미로워서 쉽게 매료된다. 특히 나의 신경을 끈 것은, <유리방패>였다. 소설 속에서 나와 M은 둘도 없는 단짝이다. 둘은 함께 약 서른 번 정도 면접을 보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만다. 그런데 우연히 지하철에서 푼 길고 긴 실타래가 네티즌 사이에서 화재가 된다. 둘은 아티스트로 오해 받지만, 그것은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된다. 언론에 나와 M의 이야기가 보도된다. 둘은 유명해지며 결국 기발한 면접의 면접관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갈림길에 선다. 그 때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된 것이다. 나와 친한 친구가 있다. 우린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끈끈한 우정을 이어왔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같이 살자는 약속까지 했다. 소설 속 나와 M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내 친구와 어른이 될 때까지 우정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가 문제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에게 나만의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각자 가야 할 서로 다른 길이 있는 법이다. 나만의 선택할 권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그 때, 우리는 슬프겠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더 크게 보면 우리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진실이란 재미있게 노는 것.' 이 말에 담긴 함축적 의미는 크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울타리 사회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에 얽매이는가. 진짜 재미있게 노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릴 정도로 우리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 특히, 사회상으로 대표되는 어른들이 그렇다. 행복이 돈과 직결된다는 물질만능주의에 갇혀 앞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행복이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소한 일에서도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먹는 것, 잠자는 것, 친구와 수다 떠는 것 등, 행복이 아니라면 뭘까.

 

   <비닐광 시대>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DJ의 일상을 짧은 문장들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책을 읽고 난 후, 무엇보다 소설이 외치는 주제가 깨끗하고 선명하게 파악됐다. 우리는 모두 디제이고, 인생 자체를 리믹스 하고 있다는 것. 리믹스 된 삶은 다양한 기교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기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리믹스 된 삶 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 창조에서 더 나은 발전으로 넘어갈수록 삶은 즐겁다. 우리는 각자의 삶이 있으며 각자의 삶은 모두 숭고하다. 삶을 디제잉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신선한 발상이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일탈을 아름답게 표현한 <무방향 버스>도 따뜻한 소설이었다. 가끔씩 우리는 일탈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일탈의 계기가 어떤 것이든지, 일탈이라는 것 자체는 항상 나쁘게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엄마의 일탈을 아름다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지겨울 때, 신선한 일탈을 추구하는 것. 자연스러운 삶의 한 일부일 뿐이다. 일정한 노선이 정해지지 않은 무방향 버스, 나도 가벼운 일탈을 하고 싶을 때 타고 싶다.

 

   <악기들의 도서관>은 교통사고를 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아무렇지 않게 죽는 것이 두려웠던 남자는 가까스로 살아난다. 그리고 여자친구에 의해 '뮤지카'라는 한 악기가게에 멈춰, 악기들이 내는 소리에 매료된다. 악기들의 소리에 절정을 느낀 그는, 결국 여자친구와 헤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 김중혁의 매력을 최고조로 이끌어 내는 건 바로 이 소설이 아닐까 싶다. 소리에 몰입되어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그가 부러웠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지금은 학생이라는 신분 아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그 목적지에 '꽝'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소설을 하나씩 읽어가며 아쉬웠던 점은, 결말이 다소 흐지부지 하다는 것.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것이 김중혁만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파악하기란 결말이 깨끗하게 나와 있어도 어려운 법인데, 김중혁의 소설은 나를 현혹 시켰다.

 

   김중혁은 자기만의 색깔이 강한 소설가다. 김중혁의 소설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이것은 정말 음악을 뛰어넘어 악기를 사랑할 때 쓸 수 있는 것임을 느꼈다. 김중혁의 음악 사랑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은 감미로운 여덟 곡을 듣게 되어 영광이다. 김중혁이 준 여덟 개의 곡들은 모두가 특별한 화음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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