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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 작성일 2009-07-27
  • 조회수 487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 中 '악기들의 도서관'

-비올라처럼 가벼운, 콘트라베이스의 소설

한보람


 우리는 '살아감' 이라는 고민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다. 과거를 살아간 많은 사람들을 포함해, 현대사회의 그 어떤 누구도 실타래처럼 엉킨 그것을 과감히 풀어내진 못했다. 그런데 그 엉킨 실타래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는 소설이 바로 ‘악기들의 도서관’이다.

 내가 이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동인문학상'때문이다. 작년, 신문을 넘기다 우연히 동인문학상 후보들의 인터뷰가 담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소리를 담아내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김중혁의 인터뷰다. '펭귄뉴스'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던 그의 이름은 나에게 퍽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소리를 담아낸다니.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날 동인문학상 후보에 오른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을 구입했다.

 그의 소설은 유쾌하다. 그 유쾌함의 근원지는 문제를 풀어낸 데에 대한 희열이 아닌 모르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해 버리는 가벼움에서 온다. 돌아가지 않는 해법. 그렇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볍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문장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다던가(악기들의 도서관), 남들은 기회조차 얻지 못해 안달인 입사면접을 장난처럼 치른다는 것(유리방패)은 그들의 가벼움이 마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마냥 가벼워 보이는 그들 속에서도 숨어있는 그들만의 삶의철학은 아무 것도 아닌 듯 하면서도 오히려 나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는 그렇게 무겁고 우리의 등판에 붙어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삶'이란 것을 마치 배드민턴 셔틀콕처럼 톡, 하고 나에게 건넸다. 사춘기를 겪을 나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나에게, 까짓 것 신경쓰지마. 하고 그가 토닥여주었다. 물론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의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게 마음대로 되느냐, 세상 너무 편하게 살려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그의 소설은 다 읽고 났을 때에 마음을 묵직하게 만든다. 그건 단순한 책의 내용과 재미를 떠나 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 자체의 무게다.

 소설집을 읽는 동안 가장 고개를 끄덕인 단편은 단연 '악기들의 도서관'이었다. 주인공은 이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면서도 나의 분신이었다. 우리는 여태까지 살면서 얼마나 열정적이었는가. 또, 충분히 그 삶을 살아냈는가. 소설 속 주인공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라는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이면서도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응원가이다.

 소설 속 사내는 자신이 죽는 순간에야 살아갈 이유를 발견한다. 그는 제대로 된 악기하나 다룰 줄 아는 것이 없고 음악적 지식도 남들만큼만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만 팔천 여개에 달하는 악기소리를 수집해 대여하는 방대한 작업을 펼쳤단 말인가. 여자 친구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점도 작용 했겠지만 아마 '뮤지카'에서 얻은 단순한 '자신감'이 제대로 된 동기일 것이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결여된 것이다. 매 순간에 있어 갈팡질팡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고 확신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나의 뒤통수를 그가 바이올린으로 시원하게 갈긴 것이다.

 나 또한 악기소리를 대여하고 싶은 마음이 다분하다. 소설 속에서 언급 된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소리는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시타르의 현 하나를 조용히 뜯었을 때 나는 소리’는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 나에게 악기들의 도서관의 필요함을 말해 주었다. 김중혁은 소설 속에 음악이라기보다는 개체적으로 이루어진 '소리'를 담았다. 그것은 조직적이고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이 아닌 '나'로 부터 시작하는 작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단지 악기 하나의 소리를 담는 고유의 과정이 자기 자신의 고유성을 증명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에 비해 나의 자세는 어떠했는가. 방대한 자료들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밧줄을 잡고 남들에게 얹혀가려 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나의 글이던, 유행하는 옷 스타일이건, 하다못해 사소한 말투 까지도 내 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은 자신을 반성해야 했다.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소리를, 피아노는 피아노 소리를, 트럼펫은 트럼펫 소리를 내아 한다. 그런 당연한 사실 앞에 나는 왜 다른 악기의 소리를 마냥 부러워하며 따라하려 했을까. 정말로 어느 날 악기도서관이 문을 연다면, 나는 가장 먼저 나의 소리를 대여할 것이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나만의 소리를. 아마 김중혁은 그런 나에게 ‘뮤지카’의 콧수염 사장처럼 농담 한마디를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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