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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하잘 것 없고 소중한 고민들 - <영두의 우연한 현실>을 읽고

  • 작성일 2009-07-27
  • 조회수 405

무릇 청소년소설이란 청소년스러워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말이나 생각이 청소년이 보기에 자연스러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의 소개 페이지가 굵은 글씨로 “가장 청소년스러운 소설”이라고 문구를 건 것을 보고 나는 내 신조를 떠올리며 ‘네까짓게 얼마나 청소년스러운지 한 번 보자’ 라는 식으로 책을 집었다. 그리고 반나절만에 6개의 단편이 든 이 책을 전부 읽고 내려놓으며 작가는 글을 매우 잘 쓰는 청소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말대로 청소년은 늘 ‘쓰잘데기 없는 것’에 관심이 많고 가슴아파한다. 이를테면 여자들의 우정. 좋아하는 것이나 취미만 틀어져도 싹 돌아서며 절교하자고 말하고 정말 말 한마디 안 나누는 얄팍한 우정. 내가 그 섬세하고도 쓸모없는 우정에 배신당했을 때 어른들은 내게 ‘나는 중학교 때 우정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크고 보니 연락되는 인간 하나 없단다.’ 며 위로해주었다. 위로를 받아도 그 친구를 보면 우정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우정 말고도 연애, 연예인, 취미, 최신 핸드폰 같은 별로 쓸모없는 것에 우리는 열광한다. 그리고 잃으면 슬퍼하다가도 어느 날 다른 것에 열광하고 있다.

 

또 어느 날은(특히 시험에 근해서) 확 진지해져서 한국 교육의 폐해부터, 때문에 10년 뒤에 자신이 재미없는 삶을 살 것이라 고민하고, ‘확 뛰어내려버릴까?’ 라고 심각하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를 보며, 부럽지만 짜증나는 오묘한 기분을 곱씹기도 하고, 그런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징징대는 다른 친구에게 따뜻한 말도 건네줘야 한다. 청소년은 남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소중한 것,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지켜내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 내가 이걸 왜 지키고 있을까 하는 고뇌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구성물들은 평소에는 뒤죽박죽으로 엉켜있어서, 제 나름대로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교과서가 말하는 질풍노도라는 시기가 되고, 반항이 되고, 변덕과 짜증이 되는 것이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속 <어떤 실연>이란 작품은 그렇게 엉켜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청소년스러움을 가장 잘 표현했다. 송미는 현실적이고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을 알아 열심히 공부하지만, 다른 두 친구는 별로 그렇지 않다. 유리는 연애에만 관심이 있고, 그에 대한 조언을 송미에게 구한다. 또 한 사람, 진주는 별에만 관심이 있고,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별을 공부하러 외국에 가겠다고 한다. 송미는 어떻게도 할 수가 없다. 진주처럼 학교를 때려 치고 ‘꿈’ 한 우물을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리처럼 아예 공부를 ‘놔 버리는’ 것도 할 수가 없다. 쓸데없지만 지켜야할 자신의 미래 때문이다. 진주처럼 꿈도 탐이 나고, 유리처럼 사랑도 욕심나지만, 송미는 잃으면 후회할 미래 때문에 공부하고 있다. 그 와중에 유리는 윤승이에게 차였다며 송미에게 위로를 구한다. 송미도 윤승을 좋아했기에 그 날은 좀 더 퉁명스럽게 위로해주었다. 윤승은 유리도 송미도 아닌 자신의 미술학원 강사를 좋아한다고 유리가 말했다. 송미는 그런 윤승을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유리를 보며 웃는다. 수없이 많은 남자를 사귀면서 이제야 첫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우스워서. 아니면 유리가 차였다는 말에 그럼 윤승이 좋아하는 사람이 송미 자신은 아닐까 했지만 역시 아니어서. 또 현실적인 자신이 한순간 쓸모없고 낭만적인 것에 설렜다는 것이 허탈해서. 또,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도 나도 아니라는 점이 후련해서, 네가 내 사랑을 네 사랑이라고 하니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지만, 너 역시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라 네게 기분나빠하긴 어려우니까. 그런 이유들이 이리저리 엉켜서 슬프지만 웃음이 된다. 웃는 송미를 보고 유리는 눈을 흘기며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의 사랑은 나를 들뜨게 하는 게 필요해서 괜히 그랬던 것이라고. 유리에게도 연애는 쓸모없지만, 아끼는 것이다. 잃고 나면 안타까워 지키고 싶은 것. 그리고 윤승을 만날 때서야 정말 아낄만한 것을 찾은 것이다. 송미는 첫사랑에 실연당한 유리를 위해 커피우유와 샌드위치를 사준다. 그리고 별과 사랑에 빠진 진주도 불러낸다.

 

송미가 열심히 미래를 쫓는 것처럼, 진주는 자신의 꿈을, 유리는 순정을 쫓고 있다. 누군가 보기에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매우 소중한 것이고, 지키기 위해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모두 이 시대의 청소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그 말과 행동이 바탕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떤 실연>의 연애과정 말고도 <빨간 신호등>의 종원의 무책임한 행동은 내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로스웰주의보>의 주인공 가람이는 내 친구가 그렇듯, 싸이월드에 글을 남기고 있다. <오답 승리의 희망> 정이는 부조리에 맞서는 청소년의 무모한 용기를 보여준다. 우스운 연애놀이부터 진지한 촛불시위까지, 모두 지금을 살고 있는 나와 너, 우리가 하는 온갖 짓거리들과 다를 바가 없다.

 

청소년으로 살면서, 나는 청소년소설이라고 외치는 어른소설을 많이 봤다. 그래서 당연히, 이 청소년소설도 ‘그래봤자 어른이 보는 반항아 이야기’일 것이라고 어림짐작했었다. 하지만 <영두의 우연한 현실>은 청소년이 변덕, 짜증, 반항 같은 것 말고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제 나름대로 표현하고 있는 청소년스러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려주었다. 내 부족함으로 청소년스러움을 전부 풀어놓기엔 모자르니, 읽고 직접 청소년스럽다는 것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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