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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박자 D. 정확하고 틀에 박힌 세상을 과감히 깨트리다

  • 작성일 2009-07-27
  • 조회수 5,380

                     

 

 

                    [ 엇박자 D. 정확하고 틀에 박힌 세상을 과감히 깨트리다. ]

                                   - 악기들의 도서관 中 ‘엇박자 D'를 읽고

 

 

엇박자. 요즘 우리 사이에서는 엇박자란 말을 흔히 찾아볼 수 없다. 항상 빠르지만 정확한, 그 사이에서 경쟁에 시달리는, 틀에 박힌 세상에서는 엇박자라는 말은 음악시간이나 겨우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엇박자는 과감히, -아니, 위험이 따라올지는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의 틀에게 깨드려지기를 요구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우스운 것이라고만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에 다시 엇박자는 그것을 아예 깨뜨려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엇박자는 남이 모르는 큰 힘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악기들의 도서관’ 가장 맨 마지막에 있는 단편, ‘엇박자 D'. 그 전 단편들부터 나는 무척 재미있게 읽고 있던 터라 엇박자 D에 대한 기대가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다. 책, 특히 단편집을 읽을 때 처음이나 마지막 단편은 다 읽고 나서의 여운에 강하게 반영하기 때문이었다.’약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본 이 책의 결말은 과연 어떤 뜻이 되어 남을까’ 하고 본 글의 향연 속으로 보였던 첫 장면은 편집실에서 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높게 솟아 올라있는 일명 ‘엇박자 D’의 얼굴. 뒤뚱거리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움이 감지되는 알파벳 D는 과연 그의 어떤 모습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느꼈을까. 키가 남들보다 지나치게 큰 것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잘나갔던 높이뛰기 선수도 아닌, 그저 남들과 다른 박자로 뛰어서 다만 조금 크게 보였을 뿐인 엇박자 D. 나는 그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요즘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신호등 앞에 서게 되면 문득 느낌이 오묘하다. 뭐랄까, 앞이나 밑만 보고 걸어가는 사람들. 미소하나 없이 차갑게, 그렇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건너가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서 저렇게 아무 말도 없이 쫓기는 것처럼 가는 걸까’하고 이상해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렇게 변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머릿속은 어렸을 때 조를 짜 신문을 만들 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 상상력들이 하나씩 열이나 압력 같은 데에 눌려 식상함으로 점점 변하고 있었다. 예쁜 우리나라 단어는 이젠 어렴풋이만 기억이 나며 혼자 이리저리 크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면서 웃던 기억들은 이미 흩어져 현실적인 내일이나 다음 주 밖에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땐 갑자기 변해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에게만 왜 저럴까 하고 묻고 있는 나 자체가 이미 정확하고 틀에 박힌 세상에 적응이 되어버린 건 아닌 가 싶었다.

엇박자 D는 확실히 떨어지는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합창 대회에서는 기어코 노래를 불러 노래를 ‘엉망’으로 만드는 자신만의 자부심이 있었고, 배우지도 않은 공연기획을 하겠다고 나서는 순수함과, 결국 그것을 성공으로 만드는 성실함이 있는 그야말로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성인이 되고, 나이가 어느 정도 먹고 나도 그 성격은 버리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답일 것이다.

이글을 쓴 김 중혁 작가님은 인물 엇박자 D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려고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일까. 엇박자 D라는 인물의 특징? 그렇다 하기에는 내용이 조금 짧다. 아니면 조금씩 뒤처지는 인물에게 바치는 위로의 글? 그렇다 하기에는 전혀 어둡고, 우울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글이다.

아, 그것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이것부터 따져보자. 과연 엇박자 D는 뒤처지는 인물인가?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 달리 별 관심 없는 일에도 일단 무조건 열심히 참여 하고 보자는 정신이 있으며. 사람들과 달리 민첩성이나 정확함 등이 그에게는 살짝 부족하다. 그리고 이름 그래도 엇박자를 이루고 살아가는 그다. 하지만 그를 뒤처지는 인물에서 약간 비틀어 보면 어떨까? 이렇게 정확하고, 빠르고, 틀에 박혀야만 적응이 될 수 있는 이 세상에 엇박자 D는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과감하게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을 깨드려 버리고 자신만의 충분한 능력으로 나간 것이니까. 당연히 세상은 그를 소외된 인물로 만들었고 졸지에 그는 ‘과감한 인물’에서 ‘별 도움 안 되는 일만 한 인물’로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자신을 뒤로 밀어버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뜨리기로 다짐한다. 공연 전문 기획자 K와 함께, 떠오르는 신인 가수 더블더빙과 함께, 세상에 돌리기엔 늦어버린, 이미 적응이 되어버린 공연 관람객들과 함께, 그리고 과감한 도전을 받아들은 세상과 함께, 그는 또 다시 신선한 충격을 안게 해준다.

음치. 말 그래도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 하지만 음치들은 자신이 음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남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면 자신은 남들과 같게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음치들은 보통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해주어야지만 ‘아, 내가 음치였구나.’ 하고 인식을 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의 엇박자 D도 그렇다. 자신은 평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시선과 결국 참지 못한 그 시선의 폭발이라는 연결선을 통해 자신은 뒤처지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D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기회’로 바꿔 그런 틀에 박힌 운명을 심어준 사람들에게 반격을 제시하게 된다. 뭐랄까. 초반에 엇박자 D의 무모한 행동에 ‘도대체 저런 인물을 갖고 어떻게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는 거지’하고 의아해했었지만 끝으로 갈수록 이 소설의 적격자는 당연 엇박자 D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엇박자 D는 소설 속 인물들의 고정관념을 깬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 고정관념은 틀린 답이다 하고 알려준 것이다.

초반에 편집조감독은 수많은 사람들 위로 솟아 있는 D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저 아저씨 너무 웃기네, 인트로에 넣으면 재미있겠어요. 아예 이번 공연 DVD 표지에 써볼까요? 카피는 이거 어때요? 엇박자 세상을 뒤집기 위해 우리의 음악도 엇박자.”

 

물론 편집조감독은 진지하게 보다는 유쾌하게, 갑자기 D를 보고 어떤 영감이 떠올라 쓴 카피이겠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카피였다. 카피라이터가 장래희망인 나는 이런 짧은 글이나 카피 등을 많이 보고, 쓰고는 했는데 편집조감독은 갑자기 D의 모습에 영감을 받고 한 번에 카피를 완성한다. 과연 나도 저런 모습을 보고 카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과연 어이없는 저 영상을 계속 돌려보면서 무슨 말을 중얼거렸을까?

 

“저 모습. 어떤 영감이 떠오르기엔 충분하겠어요.”

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까, 아니면

 

“약간……어디 아픈 사람인가 보죠?”

하고 말했을까.

 

 아마 그것은 틀에 박힌 사람과 아닌 사람들로 나뉜 후부터 차이가 났을 것이다. 정말 편집조감독의 말대로 오히려 엇박자인 것은 우리들 인데 그저 평범한 한 인물을 뒤처지는 인물로, 아니, 누구 하나의 추측으로 모든 사람이 ‘그래? 그럼 쟤가 뒤처지는 거겠네.’하며 인정해버린 건 아닐까?

무성영화로 시작된 공연은 막바지에 갑자기 조명이 꺼지며 어디선가 아주 작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시나리오 대라면 ‘더블더빙’의 최고 히트곡을 연주할 차례였던 K는 무척 당황하며 외친다.

 

“음향, 뭐가 잘못된 거야? 사운드 체크해봐.”

 

하지만 무선 헤드셋으로 돌아오는 엇박자 D의 침착한 목소리는 큰 위력을 한순간에 보여 주었다.

 

“아니야, 잘못된 건 없어. 너 몰래 만들어둔 시나리오야. 20년 존 친구들에게 바치는 선물이야.”

 

아주 작게 들리던 음악소리가 점점 커지고 스피커 사이로 나온 음악은 관객들 사이로 서서히 스며든다. 하지만, 반주도 없는, 누군지도 모르는 목소리가 하나 둘씩 늘어난다. 합창이라고 하기엔 박자도 맞지 않는 조금 애매한 노래들이 틀에 박힌 사람들 사이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든다.

 

“22명의 음치들이 부르는 20년 전 바로 그 노래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치들의 목소리로만 믹싱한 거니까 즐겁게 감상해줘.”

 

무선 헤드셋에서 들려오는 엇박자 D의 목소리는 어땠을까. 위엄 있게, 당당하게, 아니면 조용조용히 흐뭇해하면서? 하지만 누구든 엇박자 D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 당했구나.

그렇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 모두 ‘음치’다. 어둠 속이어서 그런 걸까, 평범한 노래보다 아름다웠고, 화음마저 아련히 들려왔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색다르지만 아름다운 노래들은 그 사이에서 평범하게 흘러나왔다.

엇박자 D는 세상을 깨뜨리기로 하지만 총같은 무기나 인력을 총동원해 싸운 것도 아니고, 갑자기 어떤 큰 테러를 일으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이버 해킹이나 범죄자로 변해 버린 것도 아니다. 음악. 20년 전 자신의 허점을 발견한 뒤로 그는 음악이 싫어질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만 합창단 모두 그에게 자진사퇴를 권했고, 그냥 입으로 벙긋거리기만 하라고 명령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한번 부른 노래를 멈추지 못해 음악 선생님에게 뺨까지 맞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필요치 않은 음악을 아무 뜻 없이 등에 짊었고, 그게 무게가 두 배가 되던, 세 배가 되던 그는 그 짐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음악이란 겉껍질 속에는 진정한 가치라는 금과도 같은 속이 있었으니까. 남들 다 몰라도 엇박자 D는 다 알고 있었으니까.

이 책에서 김중혁 작가님은 수많은 직업을 가진 인물들 바탕으로 자신을 포함시키셨다. 어쩔 땐 피아니스트였던 사람도, 어쩔 땐 디제이로, 어쩔 땐 실종한 어머니의 비밀을 찾고자 하는 아들, 딸들로 그렇게 수많은 자신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 엇박자 D에선 그 자신을 한 번에 정리해버릴 인물로 조용히 나타나셨다. 평범한 인물이지만 엇박자를 가지고 있던 D에게 음악 연주에 결합시킨 것은 그야말로 버려진 바다 속에 빛나는 진주를 찾은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그 진주는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빛은 더욱더 아름다워졌다.

음치의 정의. 말 그래도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 하지만 음치의 정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으로 생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들 사이에 퍼질 만큼 퍼져버린 고정관념들은 이제 한구석으로 밀어버려도 되는 것이다. 왜냐고? 우리 이미 엇박자 D의 기적을 봤으니까. 엇박자 세상을 뒤집기 위해 자신의 음악도 엇박자인 D를 우린 이미 보았으니까.

엇박자 D-원래는 더블더빙의 공연이 주목적이었지만-의 공연장은 이제 20년 전 어렴풋이 기억하는 노래로 자리잡혀있다. 그리고 20년 전 그 노래를 부른 친구들이 관객석에 자리 잡고 앉아있다. 기분 나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분위기 파악 못한 채 연신 카메라 셔터만 누르며 떠드는 사람도 없다. 그냥 그대로 멈추어 오직 그 음악에만 집중 할 뿐이다. 음치들이 부르는 노래. 아니, ‘음치라고 불릴 뿐인’ 이들이 부르는 노래. 정작 음치가 아닌 사람들은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가사? 20년 전이지만 하얀 백지에 무슨 영감을 받아 시원하게 그려가는 화가처럼 모두 기억이 난다. 그저 배려였다. ‘음치라고 불릴 뿐이었던’ 사람들, 그렇게 틀에 박혀 똑같을 수밖에 없었던 세상, 그리고 세상을 깨뜨리는 데에 기어코 성공한 엇박자 D에게 하는 특별한 배려였던 것이다. 그게 예의였으니까. 아득하게 흐려진 어떤 것을 추억하게 만들어준 그에게 마땅히 해줄 감사와 존경의 예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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