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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3mm의 산문」

  • 작성일 2009-06-22
  • 조회수 5,730




3mm의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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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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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을 거닐다가 땅바닥에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어

쭈그려앉았습니다.

3mm나 될까, 연둣빛 투명한 아기벌레였습니다. 여치인지

방아깨비인지, 얼마나 여리고 작고 그 빛이 순정하던지.

너는 어디서 왔니?

너는 어디서 왔어?

물어봅니다.

나는 너무 크고 벌레는 너무 작아

도저히 눈 맞출 수 없어

나의 말이 그 벌레에게 닿지 않아 그의 답을 듣지 못합니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엎드려

벌레를 따라갑니다.

바람이 붑니다.

내 눈이

푸르게 물들어오는

이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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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양버들』,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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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김용택 -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1982년 창비 21인 신작시집『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섬진강』『그 여자네 집』, 산문집『섬진강 이야기』『사람』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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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 윤석정 - 시인. 1977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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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키가 큽니다. 우리의 자세는 너무 고압적입니다. 우리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쩌렁쩌렁하기만 합니다. 한참 더 구부리고 한참 더 엎드려야 합니다. "너는 어디서 왔니?"라고 묻지 말고, "너는 어디서 왔어?"라고 물어야 합니다. 이 두 질문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뒤의 것에는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훨씬 더 많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쳐서 두 번을 질문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곳으로부터 온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3mm의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연둣빛 투병한 아기벌레'입니다. 오체투지 하듯 이마와 두 팔꿈치와 양 무릎을 땅에 대고 나를 무한히 낮추어 나 아닌 생명들을 공손하게 떠받들어야 합니다.

 

2009. 6. 22. 문학집배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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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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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9건

  • 익명

    한창 호기심이 왕성한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써 생각해봅니다. 아들의 요즘 관심사는 개미에요. 집앞 공터에 놀러나가 개미들을 보고는 그 작은미물에게 말을걸고 때론 밉다며 발로 죽여보기도 하더라구요. 친구가 되고싶기도 하겠고 나보다 작은 생물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얼할까 궁금하기도 하겠지요..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나보다 낮은 .. 혹은 잘살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다가가 얘기 나누고 싶어지는 시간이네요.

    • 2009-07-12 21:39:1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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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김용택 시인의 시를 읽을 때는 한 사람의 일기를 보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만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배려를 닮고 싶네요.

    • 2009-07-16 10:45:3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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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김용택 시인의 시를 만나니 반갑습니다.작년 10월에 시립도서관에서 김용택 시인을 처음 뵈었습니다.친근한 모습과 아이 같은 순수한 눈을 가진 시인의 특강을 듣고 책에 사인을 받아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어요.한번의 만남이었지만 시를 쓰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그래서 시인의 시를 더 좋아합니다.아기 벌레를 보며 인간의 자세를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 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네요.주위를 관찰하는 아름다운 눈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벌레를 친구처럼 대화하는 순수한 마음이 부럽습니다.지은이의 눈이 초록으로 변하여 벌레를 가슴에

    • 2009-07-16 11:16:56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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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품어서 벌레가 참 행복했겠어요.관심이 중요해요.

    • 2009-07-16 11:18:1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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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어릴 때 방아깨비를 잡아 방아를 찧던 기억이 나네요그러다가 죽여버린 녀석들도 많았는데 이럴 땐 아이의 호기심이 선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 2009-08-23 16:11:2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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