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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화성의 아이』

  • 작성일 2025-03-20
  • 조회수 157

   나 같으면 하루도 못 견뎠을 것 같은데······ 털 달린 짐승이라면 질색이니까. 벼룩까지 있는 개라면 더 싫고 저 깡통 로봇은 한눈에 봐도 수명이 다 됐다.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건 친근한 관계 속에 편안히 붙박여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나아가 하나의 육체에 고정되어 형식이 통일되는 것이다. 다시 몸을 갖춰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구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 소망을 들은 마야가 의아스러운 듯이 되묻는다. 

   “너는 줄곧 혼자 지냈고 지금은 몸도 사라져 사념체 같은 상태인데. 그런 채로도 지구에 가보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 내 도움이 필요하고?”

   “그래.”

   ‘도움’이라는 말에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왜냐면 그게 우리 DNA에 새겨진 최종 명령이니까. 지구로 귀환하는 건 눈먼 동물의 본능 같은 거야.”

   너무 대놓고 털어놓은 것 같아서 나는 좀 더 길게 덧붙였다. 

   “게다가 지금은 분열 중인 세포처럼 불안정한 상태야. 줄곧 안정화의 방법을 찾았지만 요원했지. 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어. 시간의 바느질을 터득했기 때문인데 먼 거리를 이동하다 보면 저절로 얻게 되는 능력이지. 내가 죽인 사람들, 그건 사실 죽인 게 아냐. 만화경을 돌려 패턴을 바꿔놓은 거지. 라포르투나호를 타고 온 사람들은 어차피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서 죽을 운명이야. 난 그들의 미래에 잔인한 이미지만 살짝 덧씌운 것이고. 네 친구들이 돌처럼 굳어 있는 것도 잠깐 시간을 정지 시켜놔서 그래. 똥을 바르던 남자는 지금쯤 악몽에서 깨어났을 거야.”

   “갑자기 왜 솔직해지는 건데?”

   “난 너무 약해서 이제는 기생물이 되는 도리밖에 없어. 네가 내 피난처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라이카는 벼룩을 네 마리 키워. 하지만 난 굳이······”

   “난 벼룩이 아냐! 네가 지구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내가 왜 지구로 돌아가야 해? 여긴 가족과 친구가 있어. 키나 말을 들어보면 지구는 아주 형편없는 곳이던데 거길 뭐 하러 가?”

   저 순진한 표정을 보니 잘만 구워삶으면 내 숙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너도 나처럼 여행자니까.”

   네가 아는 모든 존재는 여행자고 너 또한 또 다른 세계와 모험을 갈망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네 몸에도 나와 같은 유랑 벽이 있을 거라고 덧붙이면서.

   “라이카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실험견으로 뽑혀 우주로 보내졌어. 데이모스는 지구에서 화성으로, 화성에서 위성으로, 위성에서 다시 화성으로 추락할 때까지 쉼 없이 돌아다녔고, 키나는 금성으로 향하는 라포르투나호에 몸을 싣고 이곳에 도착해 우주선 사람들로부터 도망쳤지. 남자는 악몽과 악몽을 오가며 끝나지 않는 여행을 거듭했어. 즉, 네가 아는 모든 이가 살아온 곳을 떠나 다른 세계로 이주하는 모험을 겪은 셈이야. 오로지 너만······.”

   나는 강조를 위해 말을 끊고 침을 삼켰다.

   “······이 별을 떠나본 적이 없지. 집에서만 자란 착한 아이. 그게 너야.”

   마야는 동요하는 기색 없이 내 말을 들었지만 ‘떠나다’라는 동사가 마음을 건드렸음이 분명하다. 여행, 모험, 성장, 그것이 마야의 인생에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작은 규모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저토록 강한 사람은 대결이나 전투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재능을 진정으로 시험해 볼 수가 없다. 전성기를 지나 파멸해가는 지구 문명 끝자락이야말로 최초의 앨리스, 마야가 자기 힘을 시험해 볼 무대가 아니겠는가? 나는 조금씩 동요하는 마야가 가장 흔들릴 만한 카드를 다시 내밀었다.

   “나와 함께 지구에 동행만 해준다면 키나가 스스로의 의지로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줄게.”

   마야의 짙은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네가 무슨 수로?”

   “말했잖아. 난 시간을 되감을 수 있어. 갈라진 두 시간의 주름을 잡고 하나로 꿰맬 수도 있고. 키나가 온전한 눈을 가지고 화성에 도착한 것으로 바꿀 수 있어.”

   마야는 마치 저울눈을 측정하는 사람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꽃잎 같은 임시방편의 눈꺼풀 말고, 진짜 눈꺼풀을 주겠다는 말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실무적인 어조로 계속 떠들었다. 

   “이 별에 지구와 통하는 게이트가 있어. 난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통과하는 방법도 알고 있어.”

   “호수 밑바닥에 있겠지. 아저씨가 나온 간헐천 말이야. 우리도 진작 알고 있었어.”

   마야는 선수를 치듯, 그리고 인심을 쓰듯 내 말허리를 잘랐다. 건방진 면에 있어 나를 능가하는 것 같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마야의 그다음 말이었다.

   “널 데리고 갈게. 지구로.”


김성중, 『화성의 아이』, 문학동네, 2024, p.212~p.216

소설가 천운영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를 배달하며

   라이카.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지구 생명체 자리에 이름을 올린 라이카. 모스크바 거리를 배회하던 떠돌이 개가 어쩌다 우주로 쏘아 올려졌나? 온갖 장비를 매단 채, 귀환할 수도 없는 작은 인공위성에 실려, 지구 밖 우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나. 하필이면 인간에게 순종적인 개로 태어나서. 함께 훈련받던 개들보다 왜 더 영리하고 인내심은 왜 그렇게 강해서. 인간에 대한 의심도 없이 믿고 따랐나. 뜨겁게 달아오른 인공위성 안에서 라이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이카의 영혼은 우주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까?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향하고 있을까?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 이 말이 가슴 시린 이유. 널 데리러 갈게. 이 말을 읊조리게 되는 밤. 반짝이는 별들을 헤아리며. 리쉬카 치요르카 무쉬카 바스. 그보다 먼저 죽어간 우주 실험동물들의 이름을 주문처럼 대신 불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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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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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지기
  •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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