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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위풍당당」중에서

  • 작성일 2012-06-21
  • 조회수 1,174




 
 성석제,「위풍당당」중에서
 
 
 
 
“스님 아저씨, 밥!”
여산이 암자에 와서 가장 먼저 한 말이 그거였다. 그때 스님은 사정없이 그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이 무식한 놈아, 스님이면 스님이지 아저씨가 도대체 뭐여? 절에서는 밥이라는 말도 쓰질 않는 법이다.”
여산은 알밤 맞은 곳을 문지르며 반문했다.
“밥 아니면 맘마?”
“맘마고 떡이고 간에 나는 불로 익힌 공양을 하지 않으니 너나 열심히 해처먹어라.”
어느 날 여산은 밥상을 걷어차는 스님을 향해 눈을 끔벅거렸다. 물고기가 입을 뻐끔거리듯이.
“이건 밥 아니고 괴, 괴긴데. 내 잡아서 한 빠가사리매운탕.”
스님은 냄비 뚜껑으로 여산의 머리를 내리치고는 등을 돌렸다.
(중략)
여산은 먹는 것을 찾아내고 모아들이는 데 선천적으로 뛰어난 감각이 있었다. 봄이면 칡을 캐고 두릅순, 다래순을 따고 취나물과 고사리를 모으고 여름이면 머루, 다래를 찾아냈으며 버섯을 땄다. 가을이면 고욤과 멧대추를 따오고 도토리와 밤을 줍는가 하면 어디서 송이를 캐오기도 했다. 송이는 내다 팔면 양식거리로 바꿀 수도 있으련만 여산은 그것을 불전에 바치는 시늉만 하고는 제가 먹어버렸다. 능이, 영지버섯처럼 양기에 좋다는 건 스님에게 먹어보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계곡에서는 가재와 개구리를 잡아서 튀겨 먹었다. 여산이 암자 주변에 있는 동안 근처에서는 고기 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산초, 초피 열매까지 따가지고 와서 기름 만들어 전을 부쳐 먹고 발라 먹었다. 겨울에는 굴 앞에 불을 피워 산토끼를 잡는다고 소동을 벌이는가 하면 먹이가 부족해진 고라니들이 암자로 온 것을 그냥 놔뒀다가는 다 죽는다면서 잡아먹겠다고 설쳐댔다가 스님에게 죽도록 맞았다.
물론 가장 큰 식량공급원은 강이었다. 그는 강에서 나는 대부분의 물고기를 알았고 성질을 파악하고 있었다. 낚시로도 잡고 맨손으로도 잡고 그물로도 잡았다. 언제부터인가 스킨스쿠버 장비까지 갖추고 배를 타고 다니면서 물고기를 잡아댔다. 하지만 씨를 말리는 법은 없었다. 그게 제가 먹을 만큼, 필요한 만큼만 잡았다.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이 암자 앞에 쌀자루며 된장, 간장을 놓고 가는 일은 십 년 넘게 계속되어온 일이었다. 스님은 생쌀을 주식으로 씹어먹고 반찬으로 솔잎과 된장을 먹었다. 때로 눈이 쌓여 사람이 오갈 수 없게 되어 곡식 자루가 빌 때면 여산이 잡아온 물고기, 토끼 구이가 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고기를 권하는 여산과 스님 사이에는 허물없는 대거리가 오갔다. 그것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법거량(法擧量)과 비슷했다.
 
 
 
 
  작가_ 성석제 -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96년《문학사상》신인상에 시 당선, 1995년 《문학동네》에 소설을 발표. 소설집『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재미나는 인생』『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조동관 약전』『호랑이를 봤다』『홀림』『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참말로 좋은 날』『지금 행복해』『인간적이다』, 장편소설『왕을 찾아서』『아름다운 날들』『인간의 힘』『도망자 이치도』『위풍당당』등이 있음.
 
  낭독_박후기 - 1968년 경기도 평택 출생. 2003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등이 있음.
홍서준 - 배우. 뮤지컬 <우리 동네>, <위대한 캐츠비> 등에 출연.
최성원 - 배우. 연극 <왕의 남자-이>, <사랑은 비를 타고> 등에 출연.
  출전_『위풍당당』 (문학동네)
  음악_ 권재욱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성석제의 소설은 맛있습니다. 우선 차진 문장에 혀가 즐겁지요. 어리숙하고 물정 모르고 되바라지고 삐뚠 것들이, 그러니까 자연산 이웃들이 세상을 입에 올려 노는 풍자와 해학과 위트가 감칠맛 납니다. 게다가 진짜 먹거리도 푸짐합니다.『칼과 황홀』이니 『소풍』이니 하는 음식 얘기 다룬 산문집까지 묶어낸 작가이니까요. 어느 후미지고 허름한 식당에 후배들을 따라 들었다가 싸고 푸짐하면서도 수더분한 손맛에 놀라면 어김없이 ‘성석제 선생님 따라 와본 집’이라는 광고문구 같은 대답이 돌아오곤 합니다.
  인용한 대목은 웃음 맛과 음식 맛이 어우러진 대목입니다. 바위굴에서 화식 끊고 벽곡하는 도인과 수렵채취의 달인이 만났으니 진검승부가 벌어집니다. 화산암 노스님도 무위자연의 내공이 깊지만 천둥벌거숭이 여산 역시 자연합니다. 누가 본연에 더 가까이 간 인간인지 헛갈립니다. 무승부! 그러니까 둘이 의지가지해서 사는 거겠지요.
 
문학집배원 전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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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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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함이란, 한 구덕 바지락, 닮은 게 하나 없네. 그러니 타인의 삶에 비교하며 위축되지 말자. 나여!

    • 2012-06-21 08:32:3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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