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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시] 내가 강에 가는 이유

  • 작성일 2008-04-17
  • 조회수 649

낭독자 : /장옥관

내가 강에 가는 이유

 

 

장옥관

 

 

사람들은 묻는다 왜 강에 가느냐고, 인적 드문 적막 강변에 무슨 볼 일이 있느냐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 들고 집 나서면서 나도 물어본다 나는 왜 강으로 가는가

 

비둘기를 실은 낡은 바퀴 구슬프게 굴러가고 시절을 잊은 시집은 차 바닥에 뒹구는데 부지런한 버스가 부려놓은 씩씩한 공장 지나쳐 나는 왜 날마다 강으로 가는가

 

반듯한 교과서 명랑한 군대, 나날의 구름 안색 저리 훤하건만 눈 흘기는 물총새 삐죽이는 자갈 비웃음 받으며 평일 대낮에 나는 왜 강으로 가는가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 찾을 길 없을 때

 

풀숲 자갈밭에 퍼질고 앉아 밥이나 먹는다 뜨겁게 끓어올랐다가 식은 쌀밥은 말없음표처럼 촘촘하고 흰 두부의 먹먹함 사이 비쩍 마른 멸치의 서러움을 키 큰 붉은여뀌 목 빼어 기웃거린다

 

태풍 매미가 할퀸 제방은 벌건 살점을 드러내고 손발 다 잃은 버드나무 찢어진 비닐을 날개인 양 달고 서 있다

 

거센 물살에 떠밀려와 눈 뜬 채 제 살점 개미 떼에게 떼어주는 참붕어, 모로 일제히 쓰러진 갈대풀 속에는 누가 옮겨놓았을까 붉은 우단 의자 하나, 그 위에 내려온 하늘이 턱 괴고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예나 제나 한결같은 모습은 쉼 없이 부닥쳐오는 입술에 귀 맡겨둔 채 물속의 돌멩이, 어룽대는 물빛에 내 낯빛 비춰보고 저물녘 말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와서는 말하리라 돌멩이 얼굴에 꽃이 피었네? 능청 부리면 짐짓 모르는 척 받아주는 아내의 몸에 찰박이는 물소리는 서럽게 내 몸에 울려 퍼지리라

 

장옥관 시집,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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