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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촌국민학교

  • 작성일 2006-07-24
  • 조회수 349

낭독자 : 도종환/김용락

단촌국민학교

 

 

김 용 락

 

 

뿔새가 서편 하늘에 수를 놓으면

은버드나무 그늘이 교정을 안개처럼 하얗게 덮고

계단 밑의 살구나무가 신열을 앓듯이

살구꽃 향기를 보리밭으로 흘려 보내던

단촌국민학교

콧수건을 접어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땡땡땡

사변 때 포탄껍질로 만든 쇠종소리에 발도 맞추면서

검정고무신에 새끼줄을 동여매고 공차기도 하고

달빛과 어우러져

측백나무 울타리 밑을 기어다니며 술래잡기도 하던

내 유년의 성터에서

모두들 어디 갔을까

이젠 모두들 어디 갔을까

장다리꽃처럼 키가 껑충하던 첫사랑 내 여선생님도

샘이 유난히 많던 짝꿍 순이도

손풍금소리에 맞추어 울면서 어머님 은혜를 따라 부르시던

백발의 울보 교장선생님도 이젠 없는

흰구름만 둥실 떠가는

단촌국민학교

모두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20년 만에 서본 운동장은 텅 비어 쓸쓸하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물개구리처럼 뛰고 배우던 우리들의 학습

그 싱싱하고 물빛으로 반짝이던 희망의 이름들

자유, 진리, 정의, 민족, 평등, 민주주의, 사랑, 평화

그 이름들이 아직도 교정 구석구석에 남아 있을까

손때 묻은 책상에서 어린이들은

여전히 꿈을 가지고 그 이름들을 쏭알쏭알 외면서 푸른 하늘을 향해

그들의 키를 쑥쑥 키울까

추억과 현실의 단촌국민학교

그립고 아름다운 내 사랑의 파편.

 

 

---김용락 시집 『푸른 별』(창비,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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