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촌국민학교
- 작성일 200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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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촌국민학교
김 용 락
뿔새가 서편 하늘에 수를 놓으면
은버드나무 그늘이 교정을 안개처럼 하얗게 덮고
계단 밑의 살구나무가 신열을 앓듯이
살구꽃 향기를 보리밭으로 흘려 보내던
단촌국민학교
콧수건을 접어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땡땡땡
사변 때 포탄껍질로 만든 쇠종소리에 발도 맞추면서
검정고무신에 새끼줄을 동여매고 공차기도 하고
달빛과 어우러져
측백나무 울타리 밑을 기어다니며 술래잡기도 하던
내 유년의 성터에서
모두들 어디 갔을까
이젠 모두들 어디 갔을까
장다리꽃처럼 키가 껑충하던 첫사랑 내 여선생님도
샘이 유난히 많던 짝꿍 순이도
손풍금소리에 맞추어 울면서 어머님 은혜를 따라 부르시던
백발의 울보 교장선생님도 이젠 없는
흰구름만 둥실 떠가는
단촌국민학교
모두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20년 만에 서본 운동장은 텅 비어 쓸쓸하고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물개구리처럼 뛰고 배우던 우리들의 학습
그 싱싱하고 물빛으로 반짝이던 희망의 이름들
자유, 진리, 정의, 민족, 평등, 민주주의, 사랑, 평화
그 이름들이 아직도 교정 구석구석에 남아 있을까
손때 묻은 책상에서 어린이들은
여전히 꿈을 가지고 그 이름들을 쏭알쏭알 외면서 푸른 하늘을 향해
그들의 키를 쑥쑥 키울까
추억과 현실의 단촌국민학교
그립고 아름다운 내 사랑의 파편.
---김용락 시집 『푸른 별』(창비,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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