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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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가이드의 과묵함
가이드의 과묵함 이채원 어머니는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의 유리마루 위에서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다. 높기로 세계에서 순위를 다툰다는 그 건물은 그날 위쪽이 안개에 묻혀 두 동강난 듯 기이해 보였다. 어머니는 차마 그곳을 딛지 못하겠다고 눈을 가리고 물러섰다. 그때 어머니를 유리마루 위로 옮겨 놓은 건 가이드였다. 뒤에서 밀었는지, 번쩍 안아들었는지, 어떻게 옮겨 놓았는지는 순식간이어서 알 수 없었다. 그런 다음 가이드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말이 가이드지 여행하는 동안 퍽도 몸을 사려 어머니를 그렇게 옮겨 놓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가이드는 지나치게 말이 없었다. 상해에 도착해 여행사 패키지에 묶여 온 사람들이 입국절차를 마치고 피켓을 든 가이드 옆에 모였다. 가이드는 명단과 사람들을 확인한 다음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가이드를 바라보며 옆에 모여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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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의 과묵함 이채원 어머니는 까마득하게 높은 건물의 유리마루 위에서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았다. 높기로 세계에서 순위를 다툰다는 그 건물은 그날 위쪽이 안개에 묻혀 두 동강난 듯 기이해 보였다. 어머니는 차마 그곳을 딛지 못하겠다고 눈을 가리고 물러섰다. 그때 어머니를 유리마루 위로 옮겨 놓은 건 가이드였다. 뒤에서 밀었는지, 번쩍 안아들었는지, 어떻게 옮겨 놓았는지는 순식간이어서 알 수 없었다. 그런 다음 가이드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 말이 가이드지 여행하는 동안 퍽도 몸을 사려 어머니를 그렇게 옮겨 놓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가이드는 지나치게 말이 없었다. 상해에 도착해 여행사 패키지에 묶여 온 사람들이 입국절차를 마치고 피켓을 든 가이드 옆에 모였다. 가이드는 명단과 사람들을 확인한 다음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가이드를 바라보며 옆에 모여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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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그림자가이드
다른 점은 ‘단체’로는 불가능하다는 것, 코스의 내용과 일정을 미리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가이드가 가이드 이상의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림자코스는 결코 ‘관광’이나 ‘답사’가 아니었다. 작년 가을 태은이 경험한 첫 코스는 어느 수목원 내 펜션에서 이뤄졌다. 지난 2월 두 번째 코스가 진행된 곳은 항구에서 배편으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어느 작은 섬이었다. 두 차례 모두 2박 3일 일정이었다. 근처 해안가의 콘도미니엄이 이번 그림자코스의 숙소였다. 여름 휴가철이 지난 탓인지 콘도 주변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태은은 수향을 따라 콘도 4층의 객실로 올라갔다. 거실과 주방과 욕실, 두 개의 침실이 딸린 4인 가족용 객실이었다. 수향이 발코니로 향하는 거실의 유리문을 열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래도 아직은 여름을 간직한 바다가 보였다. 태은은 잠시 주변 풍경을 눈에 담았다. “바다도 좋지만, 콘도 뒤편의 숲이 꽤 근사해요.” 수향이 말했다. “차를 준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