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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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중편연재] 탑의 시간②
강가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잠보나무가 있었고, 여기에 원숭이 한 마리가 살았다. 원숭이는 자주 찾아오는 악어에게 열매를 던져 주었고 둘은 곧 친구가 되었다. 악어는 남은 열매를 돌아가서 여자 악어에게 주었다. 어느 날 여자는 그렇게 맛있는 열매를 먹는 원숭이의 심장을 먹으면 오래 살 거라며 그의 심장을 빼내오라고 했다. 악어가 그럴 수 없다고 하자, 여자는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했다. 애인이 아니라면, 당장 심장을 가져와서 그 사실을 증명하라고 재촉했다. 악어는 어쩔 수 없이 원숭이에게 가서 거짓말을 했다. 망고가 많은 섬을 알고 있다고 원숭이를 꾀어내 등에 태우고 강으로 나아갔다. 강 한 복판에 이르자 악어는 사실을 말했다. 미안하지만 여자 친구가 심장을 먹고 싶어 해서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그러자 원숭이는 그런 사연이라면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악어를 탓했다.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느라 심장이 깨져서 잠보나무의 구멍에 숨기고 나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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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쾌청의 환성(幻城) 외 1편
던져진 바다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깊이를 인간의 이름으로 제방 삼은 일은 드물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몇 등분이든 상관 않는 그녀들의 조각이 쾌청의 순애보이기를 다만 나는 바란다. 성 밖의 낮은 개가 뜯어먹어서 저문다. 이를 태양과 달이 큰 짐승으로 떨어져 뿔이 상한다고 말할 것인가? 밀물이 돌처럼, 돌이 열매처럼, 열매가 썰물처럼 잡귀마다 하루가 맺힌다. 화롱(花籠) 속의 밤이 다리 사이에 검은 지푸라기를 모으고 있었다. 이로써 문지기 여자는 신의 요리로 변해 있었다. 그 맛은 부러웠다. 이 여인은 나와 같이 버림받았는데도 털에 감싸인 한밤의 무서운 보물이 있으니까 아직 공경 받는다. 음울한 사과는 남은 하루의 절반을 벌레에게 떠맡기고 생명책 아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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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천국의 열쇠
너럭바위에 몸을 기댄 채 여자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호아다. 무릎을 감싸 안은 양손이 까무잡잡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일까. 아침의 매질이 심상치 않았음이 분명하다. 들키지 않을 데를 찾다 이 높은 산중까지 올라온 것일 게다. 그는 가만히 호아의 정수리를 바라본다. 가마가 두 개다. 그의 가마도 둘이다. 아이고, 내 새끼. 장가 두 번 갈란갑네. 어머니는 머리를 감길 때마다 그를 놀리곤 했다. 마흔이 낼모레지만 두 번은커녕 한 번도 못 갔다. 장가는 고사하고 여자를 만나 본 적도 없다. 무릎과 정강이에 굳은살이 박이고 사방팔방 제멋대로 나대는 몸이지만, 누구의 손길은 고사하고 눈길 한 번 탄 적 없는, 순결하디 순결한 몸이다. 몸뿐이랴. 그의 마음 또한 누군들 잠시 잠깐 머무른 바 없는 처녀지다. 잠깐 잠이라도 들었던 것인지 호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든다. 주먹만큼 부어오른 뺨 위로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