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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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한밤의 가수 外
한밤의 가수 - 오늘은 오늘로 충분해 2 슈크림 같은 꽃 폈네 꽃 짓밟고 가느라 자주 미끄러졌다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자꾸만 도서관 옥상에서 떨어져 내렸네 기도했네 목소리가 있고 언어가 있어 소원을 빌었으나 들어줄 신이 없었네 편지를 썼네 문자가 있고 사연이 있어 사랑을 고백했으나 읽어줄 연인이 없었네 (슈크림빵은 하루를 견디기엔 적당하네 하루를 미끄러뜨리기에도 적당하네) 상상의 외투를 입으면 팜파의 구름은 고독하고 가우초들의 마음은 처량해진다네 섬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네 내가 배를 타고 가는 그곳이 섬이라면 그대가 배를 타고 오는 이곳도 섬일 테니 슬픔은 길지 않았네 두 개의 태양은 아무에게도 동쪽을 가르쳐주지 않았네 울진 않았네 달을 부르며 잠들면 그뿐 모자를 찾을 수 없을 땐 머리를 쏴버리면 그뿐 접시엔 고깃덩이가 딱 한 덩이 침대 위에도 고깃덩이가 딱 한 덩이 연인들은 서로의 잠 속까진 참견할 수 없었던 거라네 감상이 밤마다 빗속을 뛰어다닐지라도 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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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연인들
연인들 심보선 우리는 한 쌍의 별난 기러기 다른 기러기 떼가 V자 대오로 따뜻한 남녘으로 날아갈 적에 독수리의 들판과 부엉이의 숲으로 향한다 용맹스런 자들과 친구가 되기 위하여 지혜로운 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하여 밤에 그들이 각자의 위대한 둥지에 깃들면 우리는 해변의 백사장 위에 부둥켜안고 “주여, 우리의 지친 꿈을 돌보아 주소서” 360도 고개 돌려 간절한 기도(祈禱)의 원을 그린 후 서로의 등판에 차가운 부리를 묻고 잠이 든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밤하늘에선 혜성 하나가 기다란 흰털처럼 자라나고 모든 별은 자신의 고유한 은빛 이름을 웅얼거린다 영원은 신(神)이 우주라는 사과 한 알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시간 이 밤의 우리가 내일 아침 깨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꿈속을 헤엄쳐 새벽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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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문학신간 리뷰] 불의 몫
「귀」에서 ‘나’는 “네 귓속에 묻힌 묘지”를 보며 “사라진 소리들이 햇살을 받으며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저기 내 이름도 있어, 네가 나를 불러 주지 않는다면 저곳에 눕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휜」에선 “이 밤, 당신의 연주를 듣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마도 ‘숲’의 음악과 음성은 ‘나’를 불러 주는 ‘당신’의 소리, 동시에 ‘당신’을 부르는 ‘나’의 소리일 것이다. ‘숲’은 사랑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는 “환한 잠을 따 광주리에” 담는다. 환한 잠, 이는 「불편한 연인」의 “서로 뒤집혀 새까맣게 말라 가는/ 오후 한 시, 불면에 시달리는 날들”과 대립되는 이미지다. 「불편한 연인」에서 연인은 서로에게 “이미 죽었잖아”라고 말한다. “오후 한 시”는 “죽음이 다닥다닥 들러붙는” 시간, 대낮이지만 두꺼비를 내린 것처럼 인공적인 어둠의 시간이다. 여기서 ‘죽음’은 끝나버린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