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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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번역의 역설
이와 반대로, 원문을 유려하게 풀어낸 번역, 원문에 무언가를 덧붙인 번역, 원문의 고유성을 우리 것으로 과감히 바꾸어버린 번역, 원문의 이해를 고집하며 난해한 어휘나 구문을 평범하게 대처한 번역, 복문을 단문으로 바꾸어버린 번역, 그러니까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일에 실패한 번역을 우리는 창의적인 번역이라고 부르는 대신, ‘지워내는 번역’, ‘기계적인 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기계적인 번역? ‘지워내는 번역’을 ‘기계적인 번역’이라 부르는 까닭은, 이러한 번역은 결코 한국어를 시련에 빠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안전한 번역, 제거된 번역, 거세된 번역, 한국어의 통념을 확인하고는 무사히 빠져나오는 번역이다. 무언가를 새로이 덧붙였고, 원문에 부재하는 수식들로 한국어의 역량을 과시하며 몹시 치장을 한 번역이 오히려 기계적인 번역이며, 아는 것을 확인하는 데 그치는, 모험을 하지 않는 번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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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한국 문학 번역, 그 슬픈 실상
틀린 번역 다음은 ‘틀린 번역’의 유형이다. ‘틀린 번역’이라 함은 어휘, 문장, 비유 등의 수준에서 A를 B로 번역했다든가 하는 식으로 기초적인 것들을 엉뚱하게 잘못 번역한 사례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안 좋은’ 번역이 아니라 아예 지시대상이 잘못되거나 의미가 바뀐, 말 그대로 ‘다른’ 번역이 아닌 ‘틀린’ 번역 말이다. 예를 들어, 번역가가 “수육”(23쪽)을 ‘poached meat’로 번역하지 않고 “boiled beef”(p. 14)로 번역한 것은 ‘안 좋은’ 번역과 ‘틀린’ 번역 사이의 중간쯤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적인 방식”(57쪽)으로 허기를 달래 주는 노점들’을 ‘허기를 달래 주는 한국적인 노점들’(“Korean-style street stalls”)(p. 47)로 번역한 것은 엄연히 ‘틀린’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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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세모나 네모로 얼룩을 번역하시오
[문학 리뷰(시)] 세모나 네모로 얼룩을 번역하시오 민경환 1. 액자를 믿지 않기로 하자 나는 유닛과 유닛의 세계에 결코 몰입하지 않는다- 권시우, 「유닛으로 질주하기」 지금 제도에 기생하며 무언가를 쓰거나 이렇게 한가로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거짓말이다. 다시, 거짓말이다. 이미 옛날에 다 끝났는데 여전히 '미래'가 가능하다고 말하며 줄글을 적어내리고 있다면. 현실의 편을 들면 문학은 거짓말이고, 현실을 외면해도 문학은 처음부터 끝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