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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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파이럿 외 1편
파이럿 1)2)3)4)5)6)7)8)9)10) 조시현 어딘가에서 항상 폭풍이 불고 있어서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날씨 매일 편지가 담긴 깡통들이 떠밀려 내려와 쓰고 싶었던 걸까, 닿고 싶었던 걸까 그저, 조금이라도, 사이가 멀다 출력 중입니다 진심은 쉽게 종이 위로 흘러내리고 그럴 때 마음은 늘어나는 걸까, 줄어드는 걸까 그러면 삶은 가벼워지는 걸까, 무거워지는 걸까 이제 우주는 지겹다 어릴 적 엄마가 가뒀던 붉은 방처럼 입술을 바짝 대고 창문을 뿌옇게 만들어 가며 불렀던 노래처럼 어두운 방에 색색의 전구를 켜는 것으로 신을 기념한다면 우주는 영원한 크리스마스 닫힌 방에서 초를 켜고 불고 다시 켜고 불어 세계는 점점 작아지는 선물상자 같아서 열고 열고 열면 오늘이 나오지 소박한 리추얼 너무 거대한 곳은 밀실 같아 사람들은 어디서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지 그래 어디에나 등대가 있지 거기서 비굴함을 먼저 보는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너는 말했었지만 불길한 무언가가 우리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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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끓어오르는 것이 세계의 법칙이라면 - 파이럿 외 1편
끓어오르는 것이 세계의 법칙이라면1)2)3) 조시현 * 더 많은 방에 불이 켜진다 더 많은 것이 천국에 가까워지도록 바라는 것은 언제나 더 따뜻한 조금 더 * 졸아붙은 냄비 위로 그릇들이 쌓여 가고 수술대 위에서 몸은 흩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우주먼지 되기 그것은 다음 생을 위한 약속 구성 성분이 같으니까요 * 이 방은 너무 오랫동안 조용했어요 * 엎질러진 물은 천사의 모습을 하고 높은 압력과 온도는 물질을 변화시킨다 문을 꽉 닫아야 하는 이유 성장하는 존재니까요 엄만 성질을 못 참고 용암은 부글거리고 우린 끓어오르듯 일하고 다소 미친 것처럼 사랑도 하죠 임산부의 기초체온은 약간 더 높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더 높은 열기가 필요하고요 끓어오르는 것이 세계의 법칙이라면 전부 오래 전부터 정해진 일 다정한 품을 상상하면 녹는 것도 좋아 * 아스팔트 위의 써니 사이드 업 커피도 알맞게 끓어오르고 십일월에도 꽃이 피어요 우그러든 책 모퉁이는 천사가 떠난 흔적 얼마나 멋진 다음이 오려고 자꾸만 더워질까요? * 눈을 보면 알지 영혼이 가열되고 있다는 증거 따뜻함만으로는 안 된다는 증거 천천히 누적되는 미래의 산책 * 냄새는 당하는 것 부풀어 오르는 게 염증반응이듯 마침내 비구름이 흘러내리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요 우산을 폈다 접으며 바람 부는 방향을 가늠해 봐요 비는 마음대로 국경을 넘고 하늘에서 세포가 뚝뚝 떨어져 내려도 여전히 지구는 지구 머리부터 시작해도 꼬리부터 시작해도 붕어빵이 붕어빵이듯 모든 건 완벽하게 계량되었죠 날짜변경선을 지나면 어제가 돌아와 가능한 건 겨우 이 정도의 일이어서 등압선의 방식으로 어제를 묶으면 폭죽 그래서 축제 그냥 우리 걱정은 접어 두고 춤출까 어제가 돌아왔으니까 아직은 기념일이니까 밟아도 돼 그래도 돼 의문형만으로도 모든 걸 단정 지을 수 있는 세계니까 어제 발생한 도시가 오늘 사라져도 우리는 모두 지구촌 사람들 다 같이 손을 잡고 멸망을 밀어내는 로맨스? * 찻잔 속 태풍 둥글게 둥글게 * 폭죽 따뜻해 * 물컵은 줄어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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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명작에서 괴작까지6] 처음엔 블루베리였다
그 후 모 과자 회사에서 블루베리 케이크나 블루베리 파이 같은 제품이 나왔을 때 두근거리며 사 먹어봤지만 그저 잼 맛에 설탕 맛이어서 더 갸우뚱했을 뿐이다. 지금은 항산화 열풍 때문에 거의 모든 음식에 블루베리를 넣어 먹을 만큼 인기인데 말이다. 밥에도 뿌려 먹고 김치도 담글 기세가 되리라곤 정말 생각지 못했다. 영화 속 음식에 대한 환상은 역시 가보지 못한 곳, 접해보지 못한 문화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셜록 홈즈가 기절한 사람에게 매번 브랜디를 먹일 때, 대체 어떤 술이길래 약처럼 쓰이나 하는 궁금증이 들었고, 「스위니 토드」에서 미트 파이가 나왔을 때는 파이에는 과일만 넣는 게 아니었구나, 대체 저건 어떤 맛일까 마음에 물음표가 오래 남았다.(물론 맛을 궁금해하기엔 별로 적합한 영화가 아니지만 동네에 유명한 미트 파이집이 생겨서 물음표를 지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