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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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레드벨벳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 영역본으로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었다. 독서를 좋아하는 제 아빠를 닮아 에마도 책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라고 생각한 순간 아이가 책장 한쪽을 거침없이 죽 찢었다. 나는 무언가 말하거나 생각해 보기도 전에 오른손을 들어 에마의 머리통을 후려치려고 했다. 아무런 의식도 생각도 없이 아이를 때리려는 내 손바닥을 바라보며, 가까스로 의식의 끈을 붙들고 나 자신에게로 돌아와 손을 내려놓았다. 내가 그런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책장을 찢었다. 내 몸에서 영혼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는 영혼 없이 텅 빈 몸속에 들러붙어 있어야 했다. 의식이, 정신이, 영혼이 모두 털려 나간 채로 존재해야만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만일 아이를 때렸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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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만화가 박흥용VS시인 함성호 대담] 물길에 띄운 이정표처럼
▶ 함성호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이 대표적이고 한국 소설에도 많죠. 그런 성장소설에 살이 붙으면 독일 교양소설 같은 것들로 나가는데, 거기에 더 가깝지 않은가 생각이 들어서요. 혹시 선생님은 소설이라든가 다른 문학 작품을 보셨습니까? ▶ 박흥용 : 다독했고 쭉 읽어 봤는데요. 전 어렸을 때 특히 사상서들을 보기 시작했어요. 계기가 마련돼서요. 형수님이 시집오실 때 ‘도련님, 혼숫감으로 뭘 가져갈까요?’ 해서 필요 없다고 했어요. 대신 형수님이 가진 사상서를 달라고 했죠. 헌책 60권짜리인가 30권짜리였는데 제가 달라고 하니 주시더라고요. 거기에 푹 빠져서 본 적이 있습니다. 열아홉, 스무 살 때였는데 우연히 형수님 집에 갔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본 겁니다. 불트만이라는 자유주의 신학자가 있는데요. 기독교를 엎어 놨죠. 정통 보수 신학자들을 다 쑥밭으로 만들어 놨어요. 불트만의 글을 보다가 다른 사상가들이나 슈바이처가 쓴 글을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