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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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젊은작가들의 樂취미들] 연필 들고 밖으로 고고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연필 들고 밖으로 고고 이병국 연필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옷소매가 스쳤다. 하얀 종이에 진 얼룩의 면적만큼 소매에도 얼룩이 졌다. 풍경이 오려진다. 런던 테이트 브리튼에서 한 할아버지가 그림을 모사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노트에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나는 가만히 사진으로 찍어 두기로 했다. 갤러리 사방에 걸려 있던 명화들보다 할아버지의 손놀림이 더 깊은 인상을 줬다. 강렬했던 그 순간은 꽤 강한 기억으로 남았다. 등단 상금을 들고 떠난 여행에서 나는 내가 본 것들을 어떻게 하면 온전히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떠안았다. 빈손이 아니니 다행이라고 할까, 여행은 피곤이라는 생각이 매달려 있는 건 무시하기로 하고. 나도 연필을 쥐고 선들을 긋는다. 언어로 변하지 않는 선들은 제멋대로 뻗어 나간다. 어디쯤에선 그것이 벽을 대신하기도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가장하기도 한다. 이거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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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먼지들
먼지들 박설희 공중부양의 경지에 이른 먼지들 이랑처럼 물결처럼 부스러지다가 바람에 불려가다가 나는 좌석에 가만히 내려앉는다 문상 가는 길, 누군가에 들러붙어 어디든 살짝 묻어가려는 것 차창에 머리카락 한 올이 끼여 있다 파르르 떨다가 끄덕끄덕 그림자까지 거느리고 차의 일부분이 된 양 천연덕스럽다 저 머리카락처럼 이 생에 나, 시치미 떼고 아무 데나 흘러 들어가 가벼운 척 아무것도 아닌 척 재채기로 풀풀 날리거나 피부에 오돌토돌 반점으로 돋아나 알레르기라고 과민반응 보이지 말라고······ 장례식장 한 켠 무게 없이 앉아 있다가 눈에 띄지 않게 다시 묻어가려는데 툭툭 나를 떨어 버리는 손길 공중에 떠버린 발걸음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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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상속자들 - 언약 외 1편
상속자들 김종연 이것이 편지라면 내가 사는 세계가 그저 한순간 날아와 내 집에 꽂혀 있다면 편지지에 쓰고 접어 누군가 꽂아 둔 뒤를 따라 어느 집엔가 사서함을 뒤지다 주인을 만나고 이웃하는 사이가 되어 다시 읽어 보게 되는 일이 내 세계의 전부가 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종을 이해하고 나의 성질을 이해하고 물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수상 식물들의 온화한 섭생을 이해하고 절망과 외교하는 희망의 관계자로 깊은 물을 유영하는 유령들의 두 번째 가옥이 되어 다음이 오기 전에 모두 허물어트리고 빈터에 나의 세 번째 주인을 들일 수 있다면 내분하는 쪽이 나의 여당이고 반골을 천형으로 지고 거꾸로 태어난 아기들이 무덤가에서 우는 소리가 사서함에 번지고 있다면 나의 퇴폐가 일찍이 완성되고 그 안에서 흐르는 젖과 음란이 나의 심지를 당기는 불꽃으로 세계를 태우기 시작한다면 머무르는 자리마다 빈 편지를 들고 찾아와 순진함을 요구하는 치욕이 내가 견뎌야 할 벌칙에 지나지 않는다면 내 옆에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