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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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가을의 곡선
그는 아직은 자기의 별자리를 제대로 따라가며 음악을 항해하고 있었다. 알코올은 손가락까지 퍼지지 않았다. 그녀가 듣기로는 그랬다. 진송은 눈을 감고 그녀와 연주자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공간을 떠도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늦게 도착한 초대관객 한 명이 곡이 끝나기 전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쓴 걸 제외하면 연주회는 전반적으로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진송은 일하는 틈틈이 로비에 설치된 TV로 크리스티안의 연주 모습을 보았다. 연주회가 끝난 뒤 일곱 명이 크리스티안의 베토벤과 브람스 CD를 샀다. 메트너의 CD를 구입한 사람은 두 명이었다. 크리스티안은 성실하게 사인을 하고 기분 좋게 촬영에 응했다. “내일은 제가 바래다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크리스티안을 태우고 호텔로 돌아가면서 진송이 말했다. “그래요?” “네. 제가 다른 일이 생겨서요. 다른 친구가 호텔로 올 거예요.” 대표가 연주회 중 진송을 따로 불러내 브런치 공연 문제로 예당에 다녀와 줘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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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천문학자
서영처 천문학자 바흐의 음악들은 별빛, 수백 년을 거쳐 내게 도달한다 느린 악장을 천천히 켜며 나는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 총총한 별자리를 더듬는다 선율과 화성으로 가득 찬 별들의 길과 간격 나는 둥근 하늘을 가늠하고 측량한다 활 끝에 묻히는 별빛에 귀를 곤두세운다 페가수스, 카시오페아, 북두칠성, 오리온 宇宙絃을 건드리자 푸가, 자유롭게 쫓아다닌다 내 별은 멀찍이 서서 그를 향해 반짝일까 말까 반짝일까 말까 반짝인다 무한한 창공인 바이올린의 지판 위에서 다가갈 수 없는 거리를 더듬어내던 음정…… 나는 다시 별들의 길을 추적한다 별빛들을 끌고 와 활 끝에 휘감아서 펼쳐낸다 부드러운 소리들을 비밀한 바구니에 담아둔다 부메랑 그해 가을 나는 결백했다 그러나 가끔 손거울을 들여다보면 멀리 날아갈 꿈을 꾸는 새 내 안의 새 제 눈을 찌르고야 둥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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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뒷모습과 그늘의 추억
나는 거대한 별자리 하나가 완성되는 것을 본 듯싶었다. 그해 늦가을, 나는 고시원 생활을 청산하고 원주 변두리 농가의 방 한 칸을 얻었다. 그것은 새로운 내 결단이었다. 누가 싼 방을 소개해 줘서 얻은 것이었지만 ‘하필 원주’인 게 반가웠던 것은 물론 선생 때문이었다. 그 방에서 내가 가장 먼저 읽은 책도 선생의 산문집 『Q씨에게』였다. 이미 『토지』가 완간된 시점에서 오래전의 그 글을 읽는 맛은 남달랐다. “이제 나는 몇 년 후 쓸 소설이 있어요. 지금까지 쓴 것은 그것을 위한 습작입니다.” 그런 말에 몇 번이고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책을 밤마다 아껴 읽었다. 단구동을 찾아가 먼 발치에서 선생이 계신 집을 바라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차마 부끄러워 찾아뵐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그러고도 7년 뒤, 그렇게 토지문화관에 들어간 것이었고, 선생을 먼발치에서라도 처음 뵈었던 것이다. 통영에 거처를 마련한 것은 2007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