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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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달면 삼키고 쓰면 글이다] 3화 : 독수리 다방, 기형도와 대학 생활
들어가며 기형도 시인과 성석제 소설가가 자주 찾았다는 독수리 다방을 방문했다. 마침 연세대의 졸업식 날이었는지, 푸른 가운을 입은 졸업생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카페를 들락거렸다. 카페 이용객의 연령대는 이십대 학생들부터 육, 칠십대 정도로 보이는 중노년층까지 굉장히 다양했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거쳐 왔기 때문이리라. 연세대학교의 졸업식 날은 일견 독수리 다방이 그들의 추억으로 남게 되는 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카페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이 공간의 메뉴들은 단순한 이름을 가졌다. 아메리카노 대신 블랙커피, 카페라테 대신 밀크커피로 대표되는 메뉴명들은 다방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함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영수증과 컵을 함께 제시하면 블랙커피로 리필이 1회 가능하다는 점은 작가들이 어째서 독수리 다방에 자주 왔는가, 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독, 수, 리, 셋으로 나누어진 공간들은 각각 테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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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십년감수(十年感秀)_시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김성규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장품과 함께 바닥의 얼룩과 물을 끌어다 쓴 흔적을 설명하려 삽을 든 인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방을 널빤지로 막은 동굴에서 앞니 빠진 그릇처럼 햇볕을 받으며 웃고 있는 가족들 기자들이 인화해놓은 사진 속에서 들소와 나무와 강이 새겨진 동굴 속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사내는 짐승을 쫓아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으리라 굶주린 새끼를 남겨놓고 온몸의 상처가 사내를 삼킬 때까지 지쳐 동굴로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축 늘어진 젖가슴을 만져보고 빨아보다 동그랗게 눈을 뜬 아기 퍼렇게 변색된 아기의 입술은 사냥용 독화살을 잘못 다루었으리라 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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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교군의 맛」은 독(毒)이다
[내가읽은 올해의 책] 「교군의 맛」은 독(毒)이다 ─ 명지현 장편소설 『교군의 맛』을 읽고 채현선 소설 「교군의 맛」은 독(毒)이다. 은밀하고 강하며 치명적이다. 모든 치명적인 것은 이면의 속성을 포함한다. 위험하면 위험한 만큼 빠져드는 매혹, 설명할 수 없는 그 매혹의 늪을 건너며 경험하게 되는 긴장과 카타르시스라는 달콤한 세계, 이것이 바로 교군의 맛이다. 교군의 주인인 이 여사(덕은)의 음식들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는 양가적 속성을 가진다. 검은 입술과 검은 혀로 풀어내는 매운맛의 레시피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끝내 살아내야 하는 삶의 과정과 닮아 있다. 교군의 맛을 맛본 사람들은 요리에 스며든 매운맛 속에서 하나같이 희로애락의 세계와 맞닥뜨린다. 웃거나 눈물을 흘리다 종국엔 카타르시스 지점에 도달해 무장해제 되는 결말을 맞는다. 그것은 바로 삶의 레시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