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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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공정과 인정, 그리고 감정〉―이미상 소설을 중심으로
8) 8) 『능력주의』, 마이클 영 저, 유강은 역, 2020, 이매진, 268쪽. 「밤」에서 수진은 동료 수미와 함께 한 개인 병원의 안내데스크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병원 원장에게는 두 사람의 얼굴에 습관적으로 물을 뿌리는 고약한 악취미가 있는데, 이는 수진과 수미에게 상당한 모멸의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는 수진이 ‘자기 주제’를 좀 알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인물이며, 수미가 한때 자신의 부모로부터 장래에 대한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가 가하는 모욕이란 병원 원장과 안내 데스크 직원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근거로 삼아 수진과 수미를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녀들의 미래 가능성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는 일이다. 한 사람의 현재적 위치가 그의 미래상까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원장에게 별다른 고려사항이 되지 못한다. 그에게는 오로지 직업적 위계서열에서 오는 우월감을 만끽하는 일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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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뻐꾹 왈츠
김백겸 뻐꾹 왈츠 휴대폰이 울렸다 뻐꾹 뻐꾹 뻐꾹 산 속에서 진짜 뻐꾸기가 울었다 뻐꾹 뻐꾹 뻐꾹 휴대폰에서 누구인가가 통화를 원했다 뻐꾹 뻐꾹 뻐꾹 산 속에서 누구인가가 메시지를 보냈다 뻐꾹 뻐꾹 뻐꾹 휴대폰으로 喜怒哀樂의 거래를 텄다 뻐꾹 뻐꾹 뻐꾹 산 속으로 어둠에서 길어온 메아리를 답신으로 보냈다 뻐꾹 뻐꾹 뻐꾹 휴대폰에서는 뻐꾸기 한 마리가 살면서 내 인생을 괴롭혔다 뻐꾹 뻐꾹 뻐꾹 산 속에서는 뻐꾸기 한 마리가 죽으면서 숲과 강을 슬프게 했다 뻐꾹 뻐꾹 뻐꾹 뻐꾹 왈츠가 시간과 공간을 짙은 물감처럼 물들였다 오색패션을 화려하게 입은 죽음이 손에 손잡고 춤을 추었다 누구인가가 행복한 풍경이라고 노래했다 뻐꾹 뻐꾹 뻐꾹 마하 관세음 마하 관세음이 눈을 깔고 내려다본다 쥐의 배와 뼈 속까지 쥐의 심장과 뇌 속에 있는 구중궁궐 어두운 곳까지 몸이 코끼리처럼 큰 수미산처럼 높은 마하 관세음이 귀를 세워 소리를 듣는다 쥐의 정신이 살금살금 걸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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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일상이라는 공동환상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는 점에서 나리와 같은 처지인 ‘수미’는 학원 운영자들이 어떻게든 오래 잡아 두고 싶어 하는 ‘여자 기사님’이다. 여자 기사들은 차량 운전에 대한 보수만 받고 차량에 탑승하는 아이들 관리까지 도맡아하기 때문에 승하차 도우미를 따로 고용할 비용을 아낀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성 노동자는 돌봄의 역할을 지워도 되는 인력으로 취급받는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수미는 딸 ‘서하’를 양육하며 나리가 그랬듯 딸의 슬픔에 과도한 죄책감을 느낀다. 삭감된 남편의 월급을 걱정하며 일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이 여성들은 아프다. 강도와 증상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불면, 소화불량, 흉통 등의 신체 증상들을 겪으며 발열 없이 계속 아프다. 이들은 코로나 시국이라는 공통의 재난 상황에도 처해 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가중되는 돌봄의 노동까지 수행하며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재난 또한 겪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