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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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부드러움 속 강인함, 그 따뜻한 글쓰기
무당이라는 게 사회적으로 비천한 계급이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목사님이다, 우리 오빠가 신부님이다, 집안에 출가한 스님이 계신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 할머니가 무당이다, 우리 이모가 무당이다 이런 말은 아직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무당의 본질은 신과 소통해서 불행한 사람을 위로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거든요. 무당이 되기 위해서 긴 과정이 있습니다. 내림굿은 입문식에 지나지 않고 그 뒤 혹독한 수련기를 거쳐야 해요. 수련기가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데 그 기간에 정리되는 것 같아요. 우스운 건 요즘,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 ‘인스턴트’를 인정하는 세상이니까 무당들도 혹독한 시련기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는 듯해요. 무당에 대해, 그리고 굿에 대해 일반인들이 모르기 때문에 숙련과 비숙련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해서 그런 유통이 가능하겠지요. 김유진 선생님 소설에는 치열한 취재를 하는 것이 굉장히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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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샤르트뢰즈의 나무 한 그루 -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外 1편
샤르트뢰즈의 나무 한 그루 강인한 협곡 위로 쏜살같이 흐르는 구름 별들의 운행. 나무여 보는가. 고립이 두렵지 않은 기나긴 곡선의 내부 침묵으로 벽을 쌓은 서른 개 독방 1인분의 음식을 나눠주며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 돌바닥에 깔리고 무반주의 그레고리안 찬트. 나무여 듣는가. 기도를 위해 널빤지에 무릎 꿇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작은 불빛, 조용히 한 방울 두 방울 검은 파문을 짓다가 내면의 고백을 움켜쥔 빗줄기. 나무여 아는가. 쏟아지는 장대비 골짜기 가득 허연 물보라. ————— * 샤르트뢰즈 : 프랑스 남동부의 알프스에 있는 그랑드 샤르트뢰즈 봉쇄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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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불가능한 유토피아와 (불)가능한 공동체
이러한 평가는 물론 조백헌이라는, 이청준 소설에서는 희귀한 캐릭터에 힘입은 바 크다. 소록도에 부임한 이 새로운 원장은 대체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 최량(最良)의 지배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제복’과 ‘총’으로 표상되는 군인으로서의 신분이나, 스포츠(축구)를 통한 집단의식의 고취, 혹은 오마도 간척사업을 비롯한 재건 사업, 바깥의 위협에 대한 과장된 강조 등 폭넓게 배치된 알레고리를 통해, 작가가 개발 독재시대에 대한 비판, 나아가 지배권력 비판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백헌이라는 인물의 화해적인 면모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라 보기는 무리이지만 말이다. 이 점은 조백헌 주도로 이루어지는 섬의 개혁에 제동을 거는 소설 속 여러 인물들에 의해서도 계속적으로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