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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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이상한 책 - 중첩 외 1편
이상한 책 권오영 집을 떠난 순간 사냥언어로 말하는 사냥하러 가자를 집 뒤로 가자고 말하는 사냥하는 장소를 가야 할 먼 길로 말하는 수렵의 신화 속 사냥꾼이 된다 몇 마리의 곰을 죽였을까 몇 마디 우회적인 사냥언어로 웅얼댄 건가 언젠가 와본 듯한 이곳 이제 막 벽을 뚫고 나온 듯 박제된 사슴 목이 박혀 있다 구멍 난 모자를 쓰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사내들이 우회적인 말로 키들거린다 황금빛 하이힐을 신은 그녀들이 깔깔 우회적으로 웃어댄다 책 속에 뱅뱅 돌고 있는 늙은 별 있다 외계의 나는 떠돌이 병든 별 팔십 퍼센트의 질소와 이십 퍼센트의 산소로 빚어진 나는 기호 어느 별의 언어로도 소통 불가능한 나는 이상한 책 나는 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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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중첩 외 1편
중첩 권오영 부술 듯이 문고리를 흔들어대다가 사라지는 맨발의 바람소리 듣고 있었네 꿈에서 꺼낸 죽은 나를 보고 있던 중인데 지붕도 창문도 계단도 보이지 않고 한동안 정전으로 캄캄했어, 그때부터야 내용이 담기지 않은 흰 접시가 얼굴로 커다란 구멍이 입으로 보이는 순간, 가까이 문 닫히는 소리 집중할수록 어둠이 선명했네 어둠 속으로 숨자 벽들은 수군대기 시작했지 갈라지기 시작한 틈 사이로 뻗어 나오는 질긴 소리들이 수백 개 똑같은 상자 속으로 뿌리를 박기 시작한 거야 언 강 건너다 얼음이 되어버린 숨 끊어진 밤 느린 여름이 잠을 들춰내고 꿈을 도려내고 남김없이 끄집어내는 동안에도 계속되는 꿈 자전거를 타고 구름 위 오르는 여기, 주술에 걸려 흔들리는 모닝콜 울리자 혼곤한 꿈 무너지는 지금, 결국 나는 들키고 말 거야 나를 가둬 두고 못질을 했지 상자 표면에 써놓은 글씨가 기억나 용량 : 1.5kg, 내용물 : 뇌, 용도 : 전시용 빨간 유성펜으로 써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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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깊이의 강요 외 1편
깊이의 강요 권오영 그 속으로 말려들어 가면 빼낼 수 없을 거야 모가 나면 부서질 일이 많을 거라는 말이 고리가 되어 고리를 주렁주렁 목에 걸었네 어디든 굴러 다녔네 얼굴의 모서리에서 자란 귀퉁이를 갉느라 입술이 찢어지는 일이 많았네 둥글어져야 해 죽은 지 오래된 엄마는 법을 가르치고 최선을 다한 입구는 둥글어져 깊이를 모를 바닥까지 미끄러졌네 이제 밖은 잊기로 했고 잔발을 저으며 제멋대로 내부를 흘러 다녔네 천 개의 달이 뜨면 천 개의 운명으로 번지는 그 안에서 꿈틀거렸지 해는 피투성이 입술울 자주 비추곤 했는데 60년대 화보처럼 채워지는 어둠은 성벽 같았어 내부에도 외곽은 있어서 정원을 가꾸려고 해 순전히 내부의 방식으로 꽃밭을 키워낼 거야 내부의 뿌리가 썩지 않도록 깊이를 재는 눈금을 표시해야겠어 안을 들여다봐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그 애가 젖고 있어 그런다고 운명이 빠져나오지 않아 이제 법을 배웠으면 안으로 삼켜 엄마가 겁을 주려는 거야 속 깊은